잡지에서 읽은 시

이찬_우리 시대의 '사소 실존'과 알레고리-메타시'라는 특이점(발췌)/ 광명역에서 : 주영중

검지 정숙자 2023. 11. 10. 16:31

 

    광명역에서

 

     주영중

 

 

  공룡의 뼈 안으로 도달한다

  허공에서 움직이는 공룡 꼬리처럼

  영혼은 기억합니다

 

  문상하러 가는 길

  보이지 않는 스핀

  사라진 빛으로 빛의 자식이 돌아간 시간

 

  우울이 쌓아 올린 거대 철골 구조물

  뭉개진 빛살이 몸을 감싼다

  한때 수만의 빛이 나를 무너뜨리던 순간이 있었다

 

  낯선 도시에 내리는 빛들

  초록의 빛이 숲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표백된 표정으로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집으로 집으로 

 

  바람 불던 겨울 초입

  눈 감은 두덩 위로 바알간 기운이 여명처럼 떠오를 때

  칼끝에 잠시 머물다 가는 빛 조각

  태초를 간직한 빛 조각에

  발바닥까지 허물어질 때가 있었지

 

  야음이 내린 역

  눈이 멀 것 같은데

  투명한 이물질이 흘러나오네

  사랑의 광기에 발맞추던

  달빛이 몸을 뚫고 지나가네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은 느닷없이 찾아오고

  나를 이루던 구조물도 알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데

 

  눈이 먼 꿈처럼

  꿈에라도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꿈꾸듯 광명역에서

     -전문/ 기발표작-

 

  ▶ 우리 시대의 '사소 실존'과 '알레고리-메타시'라는 특이점/ 주영중 시집『몽상가의 팝업스토어』(발췌) _이찬/ 문학평론가

  주영중의 시는 서정시와 메타시의 틈새, 생활과 예술의 경계에서 새로운 시를 창안하려는 열정과 번민으로 빛난다. 따라서 그것은 시인의 고유한 경험이나 생활의 테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도리어 '너'와 '나'로 표기되는 모든 인칭의 개별적 주체를 넘어서, 만인이 서로를 마주 보고 함께 울리는 집단적 감응의 무대로 나아가고자 한다. 달리 말해, 우리 시대의 내면 풍경인 동시에 집단적 감응 현상으로서의 '사소 실존'을 소묘하는 자리로 나아가려는 필연성의 궤적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의 시 마디마디에서 서정시의 한계이자 문제점으로 거론되어 온 '나르시시즘의 우주'를 넘어서려는 예술적 비전과 실존적 태도, 곧 메타시의 방법론이 나타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이는 결국 시인 주영중이 자신의 고유한 삶의 회로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다 같이 달싹거리는 집단적 감응의 무대, 곧 '너'와 '나'를 넘어서 우리 시대의 내면 풍경으로 자리한 '사소 실존'의 세계를 집요하게 묘파描破하는 자리로 나아가려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p. 시 65-66/ 론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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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파란』 2023-가을(30)호 <poet/ 주영중> 에서  

  * 주영중/ 2007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결코 안녕인 세계』『생환하라, 음화』『몽상가의 팝업스토어』

  * 이찬/ 2007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저서『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시론의 계보』『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 문학비평집『헤르메스의 문장들』『시/몸의 향연』『감응의 빛살』『사건들의 예지』, 문화비평집『신성한 잉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