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양말을 버렸어요/ 오연

검지 정숙자 2023. 11. 14. 15:58

 

    양말을 버렸어요

 

     오연

 

 

  항상 돋아나 있는 엄지발톱 양말을 괴롭히는 부분은 언제나 같았어요 엄지발톱은 무뚝뚝하고 상냥하지 않아서 아무리 좋은 양말도 배겨내지 못했죠 구멍 난 양말을 신으면 온 몸의 신경들이 아래로 몰려가요 뚫린 구멍으로 온 마음이 빠져 나가고 나는 다시 새로운 걸 채워야 해요

 

  엄마는 전구에 양말을 씌운 채 심각한 얼굴로 예민한 수술을 하셨죠 잠자리 날개 같은 뒤꿈치는 동그란 천으로 입막음을 하였지만 구멍 난 마음은 동그라미를 따라 문밖을 나섰어요 익숙하지 않은 것은 자꾸만 가려워요

 

  나이 든 언니들이 엄지발톱은 일자로 잘라야 한다고 왜 누누이 당부하였는지, 발톱은 두꺼워지고 단단해지고 왜 등이 굽어질까요 안으로 안으로만 파고들려 할까요 나는 신던 양말을 계속 신어서 양말에 구멍을 내요 서랍을 열면 양말들은 조용히 숨을 죽여요 선택받지 못한 것들은 백 년이 되어도 그대로 있고 나는 또 새 양말을 집어 들어요

 

  가까이 있는 것은 쉽게 닳아 버리거나, 자꾸만 잘라내 버려야 하고 새살이 돋어나야 해요 허기가 져요 한 번쯤은 엄지발톱도 물렁해지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양말을 오래 신을 수 있을 텐데요 오늘도 난 구멍 난 양말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요

      -전문-

 

  ♣ 추천의 말

  오연, 이 분을 시단의 새 식구로 추천한다.이 분은 오랜 기간 시와 함께하며 살아왔다. 읽고, 감상하고, 쓰기의 연속이 이 분의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오연 시인은 세상을 관찰하고 그 비의를 찾아내는 힘이 남다르다. 그 거대한 책 속에 감춰져 있는 뜻을 읽어내고 이것을 다시 새로운 형상으로 전이시켜 제시해 주는 매우 능력 있는 시인이다. 앞으로 멀리 뻗어나갈 수 있는 저력이 보여 든든하다.

  이 분을 미네르바의 이름으로 추천하게 되어 기쁘다.  (p. 시 242 / 론 250) (문효치/ 본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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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2023-가을(90)호 <신인 등단> 에서

   * 오연(본명: 오정애)/ 서울 출생, 세종대학교 졸업, 시예술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