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국보 70호『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정용국(시조시인)

검지 정숙자 2023. 7. 22. 01:18

 

    국보 70호『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단기 4279년(1946년) 조선어학회가 펴낸 영인본

 

    정용국/ 시조시인

 

 

  지구상에 수많은 문자가 존재하지만 그것의 창제 근원을 알 수 있는 문자는 훈민정음이 유일하다 하겠다. 1446년 세종대왕은 조정의 많은 신하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중국의 문자를 쓰고 있던 당시에 조선의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고 그것을 세상에 반포하는 행위는 상당히 큰 위험을 무릅써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종께서는 이를 반대하는 신하를 옥에 가두면서까지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더 나아가 새 문자로 한문서적을 번역 출간하여 훈민정음이 세상에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구축하는 일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은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일제 강점기였던 1940년에 우여곡절을 거쳐서 간송 전형필 선생이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일제에 의해 훼손될지도 모를 것을염려하여 해방이 되기까지 공표하지 않았다. 33장으로 제본된 이 작은 책에는 세종의 곡진한 마음이 느껴지는 어제서문과 예의로 이루어진 본문과 해례(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그리고 용자례)로 구성되었으며 말미에 정인지 후서가 붙어 있다. 1962년에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된 엄청난 문화 한국의 자랑이며 인류의 유산이다.

  간송은 해방 이후에 훈민정음 연구를 위해 영인본 촬영을 허락하게 되었는데 이는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이 어마어마한 서적을 해체하다가 발생할지도 모를 위험을 생각해보면 정말로 살이 떨리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영인본은 단기 4279년(1946년) 10월 9일에 조선어학회가 발간한 것인데 종이의 질도 좋지 않고 제책도 허술한 대중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아현동 고서점에서 구입한 이 책은 구입 당시 종이로 덧붙였던 서제 "訓民正音"이 떨어져 나간 상태여서 필자가 졸필로 써서 붙여 놓았고 뒷면에는 "이화여자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과 2학년" 이 아무개 학생의 펜글씨가 아주 유려한 한자로 적혀 있다. 또한 빈 공간마다 공부하느라 써놓은 각주나 설명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더욱 정감이 가는 서책이다. 이제는 발간한 지 77년이 되어 빈약한 영인본은 가장자리가 떨어져나가서 커버를 잘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다. 책을 꺼내 볼 때마다 우리 민족의 위상을 만들고 지켜주신 세종대왕의 노심초사를 생각하고 왜 유네스코가 문맹퇴치에 기여한 자에게 주는 상 이름을 <세종상>이라 명명하였는지를 되새겨본다.

  지금 세계는 우리 한글을 주목하고 있다. 많은 언어학자들이 세계 최고의 언어로 공인하는 상황이고 그 방증은 도처에서 발견하고 입증할 수 있다. 제자원리 속에 우주의 기운이 담겨 있고 창제 이유에는 백성을 '어엿비' 여긴 대왕의 사랑이 가득하고, 문자의 주인이 바로 우리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음소문자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자질문자資質文字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세계 공용어인 영어와의 구성이 유사하여 컴퓨터 체계를 구사하는 데 한글은 최고의 편리함과 과학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소장하고 있는 영인본 훈민정음은 책의 가격으로 보자면 미미하겠지만 한글의 음보를 지켜서 시조를 쓰는 필자에게는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감사의 힘을 주는 귀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p. 12)

  (시조시인)

 

  * 블로그 註: 정용국 선생님께서 손수 써붙였다는 서제 "訓民正音", 책에서 감상 要   

 

  --------------------------------

  * 『문학의 집 · 서울』 2023. 7월(261)호 <내 서가의 귀중본> 에서

'에세이 한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년의 풍경에서/ 강나루  (0) 2023.08.02
자유의 자유/ 강나루  (0) 2023.08.02
문학이 나를 살렸다/ 이광복(소설가)  (0) 2023.07.21
아버지/ 정승재  (2) 2023.07.20
헤밍웨이의 법칙/ 이길원  (0) 202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