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유년의 풍경에서
강나루
겨울에는 새벽기도를 나가는 할머니를 몇 번이고
뒤따라갔고 내가 뒤따르는 줄도 모르고 느릿느릿 지팡이를
짚은 뒤를 맞춰 걸었다. 문득, 부모님께서도 언젠가 저리
느릿느릿 지팡이를 짚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언젠가
또 손자가 그 뒤를 몰래 따를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에 막 들어가던 어린 시절, 이어령 교수가 쓴 『생각에 날개를 달자』라는 시리즈를 읽었다. 이때 알게 된 고정관념이라는 개념은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신경을 쓰는 요소가 되었다. 그쯤에 읽었던 어린이논어에서 군자는 지름길로 가지 않는다, 행불유경行不有徑이라고 하는 것을 읽고 엉뚱하게 여기에 고정관념을 대입해서 왜 그래야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 산을 가로지르고 구불구불 미로 같은 골목길을 텀험하며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아 다녀봤다. 한참을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름길을 찾아 쏘다니는 것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크고 잘 닦은 길로 다니는 것이 도깨비풀도 안 들러붙고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큰 시간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이 내게는 강박이 되었다. 이 사람의 주장을 들으면 저 사람의 주장도 듣기 전까지는 의심하고, 선의를 불신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먼저 부정한 다음에 생각하는 나쁜 버릇이 되었다. 그런 내게 지난 3년은 의심과 불신과 부정을 마모시키는 시간이었다. 처음 취직해서 사회생활을 통해 여러 인간군상과 부대끼고, 십 년 넘게 살던 동네를 떠나기도 하고, 다시 정든 동네로 돌아오고, 떠도는 시간을 잠시 겪었다. 그러나 가장 큰 사건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일이다. 동생들은 서울에 일을 하기 위해 올라갔다. 나도 서울에 일을 하기 위해 갔었다. 할머니께서는 요양병원에 가셨다.
2020년 4월의 어느 날, 다시 부모님이 계시는 광주로 돌아오며 광주송정역에서 어느 조손을 보았다. 네 발 달린 지팡이를 짚은 등 굽은 노인이 손녀의 손을 바들바들 잡고 걷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동생들과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함께 살던 때가 떠오른다.
할머니와 함께 걷게 되면 나는 늘 할머니의 발걸음에 맞춰 느릿느릿 걸었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한 발짝 앞서 게걸음으로 내려가며 지팡이가 되었다. 블랙아이스를 주의하라는 겨울에는 새벽기도를 나가는 할머니를 몇 번이고 뒤따라갔고 내가 뒤따르는 줄도 모르고 느릿느릿 지팡이를 짚은 뒤를 맞춰 걸었다. 문득, 부모님께서도 언젠가 저리 느릿느릿 지팡이를 짚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언젠가 또 손자가 그 뒤를 몰래 따를지도 모르겠다. 잠깐 산책한다며 나간 뒤를 따르면 그새 저 멀리 빠르게 걷는 빠른 걸음이 그렇게 느려진다니. 할머니께서도 성큼성큼 걷고, 급할 때는 또 뛰었을 것이다. 이제야 성큼성큼 하려는 내 걸음은 할머니의 느린 걸음을 따라갈 수 없다.
정든 동네로 다시 이사를 오고 보니 2년도 안 되는 짧은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20년 가깝게 살면서는 하나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것 같은데 실은 그곳에 있던 나만 몰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파트가 있는 산도 다녔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모두 있는 곳이기에 등산로를 따라 크게 걸으면 높은 곳에서 저 멀리 대학교 건물이 보이고 중턱에서 고등학교가 보이고 내려오면 오래 살았던 집이 있는 거리다. 덕분에 산책을 하다 보면 등하교하던 산길, 할머니 손 잡고 돌아다니던 거리, 차에 막내 동생을 태우고 오가던 도로를 지나온다. 살던 동네로 도로 이사오고 나니 과거를 덮는 것들, 새로운 것들만 잔뜩 보인다.
할머니께서 나 좋아한다고 가끔 사오시던 기름지고 설익은 닭꼬치를 팔던 분식집은 건물을 헐고 새 건물에 햄버거 가게가 들어섰다. 옛집은 담장을 허물고 꽃밭을 만들었다. 집과 집 사이에 담벼락 대신 꽃밭이 있는 게 참 기분 좋다. 어차피 차단기도 없어 이 사람 저사람 다 다니는데 돌벽이 무슨 소용이었을까? 내가 살던 때에도 담벼락이 꽃밭이었다면 매일 아침 등교하고 출근할 때마다 꽃을 볼 수 있어 좋지 않았을까 조금 아쉽다.
진부하지만, 돌이켜보면서 소중했음을 비로소 깨닫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이 동네의 기억이 그렇다. 예전에는 가족이 모여 사는 것이 당연했다. 큰외삼촌도 가까운 지역에 살았고, 큰고모도 작은고모도 삼촌도 모두 근방에 살았다. 우리 가족도 함께 살았다. 하지만 큰외삼촌과 할아버지, 큰고모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곳에 자리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족이 늘 모여 산다는 생각이 고정관념이었다. 초등학교를 오갈 때 늘 할아버지께서 먼저 손을 잡아주셨지만, 나는 한 번도 먼저 손을 잡은 것이 없음을 깨닫고서야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발맞춰 걸었다. 한밤중에 한 번씩 불현듯 깨어 할머니께서 숨은 쉬시는지 조용히 다가가 숨소리를 확인하고 다시 잠들곤 했다. 요양병원에 모시고서도 아침 일찍 걸려오는 전화를 쉽사리 먼저 끊질 못한다.
인간은 언젠가는 이별을 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님 슬하에 있다가 성장하여 제 길을 가게 된다. 그러나 근래에 내게 닥친 가족의 해체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언제까지나 같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자연의 섭리를 깨우쳐 준 셈이다. 이제 다시 3대가 함께 살았던 추억이 있는 고향처럼 정든 곳으로 돌아와 유년에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다시금 바라보니 새삼스럽다. ▩ (p. 20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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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집 『낮은 대문이 내게 건네는 말』에서/ 2022. 8. 30. <시와사람> 펴냄
* 강나루/ 1989년 서울 출생, 2020년『아동문학세상』으로 동시 부문 & 2020년『에세이스트』로 수필 부문 & 2020년 『시와사람』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감자가 눈을 뜰 때』, 동시집『백화점에 여우가 나타났어요』, 연구서『휴머니즘과 자연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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