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짝사랑
김지영
그녀가 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치마를 걷어 올리고 고쟁이에서 반으로 접힌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우체부가 그러는디 큰아들이 보낸 것이라 하등마."
오매불망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던 그녀의 손끝이 약간 떨렸다. 그녀에게서 건네받은 편지를 개봉해 읽었다. 편지는 어머니 잘 계시느냐는 안부로부터 시작되었다. 본론은 업무가 바빠서 올 추석에도 고향에 내려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어느 사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나는 아버지가 피우는 담배 연기를 노상 맡고 있던 터라 그녀가 내뿜는 담배 냄새가 싫지 않았다.
"내가 부르는 대로 답장 좀 써 주랑께!"
그녀는 온갖 욕이란 욕을 다 쏟아내며 나한테 받아 적으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말 편지가 끝날 때까지 듣고만 있었다. 거친 욕들은 빼고 어미는 잘 있으며 너의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썼다. 내가 쓴 편지를 그녀에게 읽어 주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그녀는 내 손을 꼭 잡고 흔들더니 주머니에서 거위 알 하나를 꺼내 내게 주었다. 거위 알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내게 편지를 쓰러 올 때마다 그녀가 내게 주는 일종의 대필 값이었다. 처음에는 받지 않겠다고 사양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답장이 오든 안 오든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써서 부쳤다. 그녀는 내게 말 편지를 먼저 썼고 나는 편지를 쓰면서 몽글몽글한 단어들만 취해서 편지를 마무리했다.
그녀에게는 삼 형제의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만 도회지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나머지 자식들은 초등학교만 나와서 농사를 짓거나 도시의 공장으로 가서 일을 했다. 큰아들이 학교 공부를 마치고 도청에 취직을 했다. 그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다. 아들이 도회지에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나서 고향 집에는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보석이 다른 여자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명절이 되어도 찾아오지 않는 것이 더 괘씸했다. 무엇 때문에 모자 사이가 벌어졌는지 깊은 내막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아들 바라기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아무리 바쁜 농번기에도 아들에게 편지 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참으로 질긴 짝사랑이었다.
그녀가 퍼붓듯 쏟아놓은 욕은 그녀 자신에 대한 질책 같았다. 그녀가 얼마나 마음속으로 아들을 그리워했는지 그것은 참으로 집요하고 지독했다.
그녀는 명주실을 베틀에 매는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베도 다른 사람들의 두 배나 빠르게 짰다. 동네 사람들이 베를 짜다 실이 엉클어지면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베틀 위에 올라앉으면 엉클어진 실이 금세 풀렸다. 명주 베를 팔아서 아들을 공부시켰다.
그녀는 목청도 커서 닭을 부르는 소리가 담장 몇 개는 넘어갔다. 몸피에는 살 한 점 붙지 않았다. 걸음걸이는 다람쥐처럼 빨랐다. 보통 하는 말도 욕이 반 섞여 있었다. 욕을 하는 그녀나 듣는 사람이나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의 무수한 편지에도 불구하고 큰아들은 어쩌다 답장을 한 번씩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와 자식의 생각은 하늘과 땅의 간극만큼 멀었다. 편지 대필은 내가 결혼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내가 집을 떠난 뒤 그녀의 편지 대필은 내 동생에게 이어졌다.
그녀의 짝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마지막 생은 막내아들 집에서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걸어온 수많은 시간 가운데 그녀는 꽃 한 송이가 되어 피어 있다. ▩ (p. 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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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산문집 『시간의 나이아스』에서, 2017. 11. 24. <시산문> 펴냄
* 김지영/ 전남 강진 출생, 1999-1994년 성동주부백일장 장원, 1995년 전국마로니에 여성백일장 장원, 1999년 한국예총 예술세계 신인상 수상, 2016년 계간 웹북 시조 신인상 수상, 2016년 한국문학예술 드라마 신인상 수상, 2016년 ⟪국민일보⟫ 신춘문예 밀알상 수상, 시집『내 안의 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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