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팔 일간의 외출
김지영
친정의 막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중국의 북경으로 여행을 가는데 부모님이 나와 함께 가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여행의 제의를 무조건 반길 수만은 없었다. 가족의 끼니를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얼떨결에 떠나온 여행이라 내가 챙긴 것은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다.
북경의 호텔에 여장을 푼 것은 5월 중순이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의 스위트룸은 15층에 있었고 그 크기가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사방으로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시원하게 뚫린 십 차선 도로에는 차들이 질주하고 잘 다듬어진 가로수들과 꽃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아스라이 지평선처럼 뻗은 도시는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넓었다. 서울은 어느 물에 올라가도 산이 보이는데 이곳에는 산이 보이지 않았다. 북경의 거리에는 세련된 사람들이 활기차게 걷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에 온 듯했다.
호텔에서 조식을 마치고 로비로 내려가자 공항으로 마중나왔던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어를 현지인처럼 유창하게 하는 막내는 그 기사와의 인연이 십 년이 넘었다고 한다. 동생이 중국에 볼일이 있을 때마다 편리한 발이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첫날은 천안문 광장을 둘러보고 자금성으로 갔다. '자금성'의 규모와 크기에 입이 딱 벌어졌다. '자금성'은 애초 설계의 반 정도로 마무리된 궁이라고 한다. 궁실이 9,000개, 넓이가 72만㎡이며 왕궁 주면에 높이 3m의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장벽 너머에 52m의 하천이 흐르고 있어서 완벽한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자금성'의 바닥에 깔린 네모 반듯한 돌들이 인상적이었다. 돌로 된 바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팔십이 넘은 아버지가 걷기 힘들 것 같아서 휠체어를 타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냥 걸어서 구경을 마쳤다.
'서태후'의 여름별장 '이화원'에서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한국 관광객들을 만났다. 세련된 복장과 맑은 피부를 가진 한국 사람들은 어디서나 표가 났다.
'서태후'의 여름별장 '이화원'은 인공호수이며 땅을 파낸 흙이 산을 만들었다. 그 산의 이름이 '만수산'이다. '이화원'은 여의도의 10배 크기라니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이화원'을 만들게 하고 사용한 '서태후'는 나라를 망하게 한 여자로 역사가 기록하고 있었다.
협곡에 인공으로 만들어 배를 띄워 놓은 '용경협'에서 보았던 자연의 아름다움은 한 폭의 산수화 같았다. 바람과 세월이 만들어 놓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협곡의 푸른 물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작음을 느꼈다.
'만리장성'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보랏빛으로 피어 있는 꽃의 군락지를 지나갔다. 한없이 펼쳐진 꽃길을 달렸다. 기사님의 설명을 듣고 아카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본 보랏빛 아카시아는 환상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만리장성'은 길이가 21,196㎞로 만 리가 넘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인간이 계획하고 그것을 만들어 가는 인내의 과정을 보는 것 같아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성벽을 걷는데 지린내가 진동했다. 미래의 후손들에게 전해질 역사의 현장이 훼손되고 있어서 마음이 언짢았다.
북경 서커스를 보았다. 사람이 몸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스토리가 있는 서커스여서 다가오는 감동이 더 진했다. 자전거묘기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보는 동안 마음이 저릿했다. '홍차우' 상가에 들러 진주를 실컷 구경했다. 진주 값이 서울에 비하면 반 가격도 되지 않았다.
북경의 뒷골목에 들렀다. 아주 오래전 옛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궁처럼 연결된 골목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인상적이었다. 기와와 기둥 대문의 색으로 주인의 집과 하인의 집이 구별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력거를 탔다. 아버지가 중간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깡마른 인력거꾼이 불쌍해서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리시면 저 사람은 돈을 벌 수가 없어요."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버지는 팁을 넉넉하게 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기어이 삼 분의 이 정도만 돌고 인력거에서 내려 걸었다.
가는 곳마다 기사님이 추천한 맛집에서 한식과 중식을 번갈아 가면서 먹었다. 저녁에는 동생이 호텔 밖에서 마사지사들을 불러왔다. 그녀들의 손놀림은 너무나 부드럽고 정교했다. 마사지는 몸의 근육을 이완시킬 뿐 아니라 마음까지 이완시켜 주었다. 스위트룸에서 가장 잘 되어 있는 것은 목욕시설이었다. 서울의 욕조 세 개를 합한 것 같은 크기의 욕조에서 엄마의 몸에 비누칠을 해주며 목욕을 했다. 부모님은 몸살 한 번 나지 않고 여행 내내 씩씩하게 지내셨다. 성격이 급한 아버지는 어디에 가나 우리보다 먼저 줄을 섰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참으로 질기고 연민에 찬 눈맞춤이었다.
부모님과의 북경 자유여행은 막냇동생의 세심한 배려가 숨어 있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부모님과 한 공간에서 지냈던 팔 일간의 여행은 내 생애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이었다. ▩ (p. 7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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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산문집 『시간의 나이아스』에서, 2017. 11. 24. <시산문> 펴냄
* 김지영/ 전남 강진 출생, 1999-1994년 성동주부백일장 장원, 1995년 전국마로니에 여성백일장 장원, 1999년 한국예총 예술세계 신인상 수상, 2016년 계간 웹북 시조 신인상 수상, 2016년 한국문학예술 드라마 신인상 수상, 2016년 ⟪국민일보⟫ 신춘문예 밀알상 수상, 시집『내 안의 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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