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연암! 그리고 창대와 장복이/ 김지형(수필가)

검지 정숙자 2023. 4. 13. 02:32

 

    연암! 그리고 창대와 장복이

 

    김지형/ 수필가

 

 

  연암 박지원은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에 축하사절로 떠나는 삼종형 박명원의 일행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그는 이 여행에서 연경을 지나 열하까지의 여정을, 단순한 기행문으로서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 지리, 풍속, 건축, 선박, 의학, 정치, 경제, 문학, 천문 등에 걸친 신문물을 총망라하여 상세하게 저술함으로 저 유명한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후세에 남겼다.

  이 여정에 동반한 연암의 두 하인이 창대와 장복이다. 이중 창대는 마부이다.

  "연암이 떠날 때에 안장에 걸린 양쪽 걸랑에는 왼쪽은 벼루, 오른쪽은 석경, 붓 두 자루, 먹 한 장, 공책 네 권에 『이정록里程錄』 한 축, 이렇게 간편한 행장에, 창대는 앞에 서고 장복은 뒤에 섰다."

  이로부터 등장한 그들은 항상 연암을 떠나지 않고 더없이 충직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며 주인과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다. 그 둘은 때로는 우직할 정도로 순수했고, 때로는 엉뚱한 해학으로 사람을 웃게 만들기도 했으며 더러는 모자란 면도 잇었으나, 그들을 감싸는 연암에게서는 역시 대인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장복이는 행장 보살피는 데 조심성이 없고 물건을 잃어버리기를 잘했다.

  "장복이는 초행길에 나이가 어리고 성질이 아주 투미한 데다가 동행하는 마부들이 자주 농담을 붙여 놀려준즉, 이것을 참말로 알아듣는다. 먼 길에 길동무가 이 꼴이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답답하구나! 하고 연암은 탄식하나 결코 그의 불평에서 미움과 흉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주인에 그 하인이라! 주인의 기분과 간식을 틈틈이 챙기며 "어데를 가셨습니까? 소인은 속이 타서 꼭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 순박한 말투에서 그가 얼마나 충직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들의 여정은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드넓고 험한 요동벌에서 때로는 큰비를 만나기도 하고 말을 탄 채로 큰물을 건너기는 다반사, 어느 때는 하루에 아홉 번 강을 건너기도 했다.「일신수필馹迅隨筆」에서는 신광녕에서 산해관까지 도합 562리를 9일 동안 달려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그 고생이 오죽했으랴!

  "······ 어느 날은 창대를 시켜 말고삐를 놓고 장복이와 함께 양쪽으로 붙잡도록 하고 말 위에서 도적잠을 자며 85리를 오기도 했다. 하인들은 걸을 떄나 머무를 때나 모두 선 채로 잠을 잤다."

  나는 여기서 연암이 지도자의 표본이라면 창대와 장복이는 우리 조선을 은근과 끈기로 이끌어 온 서민의 힘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황성에서 열하(여름철 황제의 피서지)까지 5일 동안 700리를 가는데 이번에는 일행이 모두 견마잡이(창대)한 명씩만 데리고 떠나게 되었다.

  "장복이가 말등자를 붙들고 늘어져 목멘 울음으로 나를 차마 못 놓기에 나는 알아듣도록 타일러 돌려보낸즉 이번에는 창대와 서로 손을 붙잡고 둘이 마주 우는데 눈물이 비 오듯 했다. 만리를 동행해 왔다가 한편은 가고, 한편은 남아 처지니 인정상 당연한 일이다." 이들의 생이별은 우리나라 대악부大樂府에 '배따라기'(배가 떠나간다)는 곡이 있는데, 그 곡조가 창자를 에이듯이 구슬프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그것과 가히 비교할 정도라고 연암은 술회하고 있다.

  험한 물길 산길을 넘어 8월 9일(을묘일) 난하를 건너 드디어 열하에 도착했다.

  연암의 위대함과 창대, 장복이의 충직한 보필이 있었기에 『열하일기』가 탄생되어 오늘날 우리 고전문학사에서 귀중한 보고가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연암과 고락을 같이했던, 창대와 장복이의 역할도 그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음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에 명멸한 훌륭한 인재나 사건의 뒤안길에는 이름 없이 스러져간 많은 민초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음을 깨닫는다. 창대와 장복이와 같은 순박하고 인정스러운 인간 본연의 인간상이 그립다. ▩ (p. 7)

    (수필가)

 

  ---------------------------

  * 『문학의 집 · 서울』 2023. 2월(256)호, 7쪽 <고전에게 길을 묻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