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과 쓸쓸함
니체의 「삶에의 찬가」
유혜자/ 수필가
철학자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 1844-1900, 56세)가 작곡한 합창 「삶에의 찬가」를 들으면 성가곡처럼 거룩하고 장엄하게 느껴진다.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e 1867-1937, 70세)의 시 "진정한 친구"가 진심으로 친구를 사랑하듯 나는 그대를 사랑하렵니다/ 오 신비막측한 삶이여···"로 시작되는 독일어 가사를 못 알아들어서인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니체가 이렇게 숭고한 성가곡을 작곡했을까 의아심이 들었다.
현대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 니체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좀 알려져 있다. 그러나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열 살 무렵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할렐루야」를 듣고 감동, 작곡가가 되려고 결심하여 젊어서 많은 피아노곡을 작곡했다는 것은 나도 음악에세이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가 20세 때 작곡한 12곡의 예술가곡이 문학적 내용과 언어의 선율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슈베르트와 슈만,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다. 한때 작곡가와 철학 한 군데에 발을 못 붙이고 방황하던 니체는 청년기 이후에는 철학연구에 집중하느라 음악에서 멀어졌으나 이후로도 음악은 그의 삶이나 사상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25세(1869년)에 스위스 바질대학 교수 재직 시 그의 사상은 리하르트 바그너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 음악적인 자극으로 중단했던 작곡을 재개하여 몇 작품을 완성했다. 그 이후 세월이 가면서 바그너의 기독교와 반유대주의 등 니체에게 용납되지 않는 요소가 강해져서 1880년 니체는 바그너 반대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882년 니체는 루 살로메를 만나게 되었다. 1970년대 베스트 셀러였던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H. F. 페터즈 저)를 읽고 나는 그야말로 루 살로메의 팜므 파탈의 매력에 감탄한 일이 있었다. 21세에는 니체를 만났었지만 후일 만난 시인 릴케와의 사랑이 많이 알려졌고 그 후는 소설과 문학평론을 여러 편 남긴 작가로 프로이트의 제자가 되어 정신분석가로 활약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화려한 남성 편력가로 만났던 이성들에게 찬란한 불꽃 같은 열정, 예술혼을 자극하여 좋은 작품을 낳게 했던 영혼의 뮤즈라는 면으로 그의 무한한 능력을 선망했었다.
루 살로메에게 있어 니체는 한때 교제했던 이에 불과했겠지만, 니체의 「삶에의 찬가」를 들으면 루 살로메는 얼마나 큰 존재였던가 생각해 보게 된다. 니체는 취리히 대학에서 비교종교학, 신학, 예술사, 철학을 공부하던 루 살로메를 킨켈 교수의 소개로 로마의 산 피에트로 성당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 파울 레도 함께였다. 니체는 오르타 호수의 북쪽 연안을 산책하면서 루 살로메와 진지한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의 뛰어난 지성에 감명을 받아 만난 지 얼만 안 되어서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루 살로메의 제안으로 니체와 친구인 파울 레와 친구로 지내자고 셋이서 동거생활을 하면서 두 번째 청혼을 했으나 그것도 성사되지 않아 각자 다른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니체는 루 살로메와 헤어진 뒤, 현대 문명의 허무주의와 퇴폐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생성 개념을 강조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탈고했다. 실연의 상처가 없었다면 이 책이 탄생할 수 없었다고 니체는 주장했다고 한다. 니체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는 "이제까지 그 아가씨처럼 재능 있고 사색 깊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삼십 분만 함께 있으면 서로 크게 얻는 점이 있으므로 둘 다 행복해집니다. 이 마지막 1년에 내 최대의 저작을 완성할 수 있었던 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헤어진 후, 1885년에 루 살로메가 발표한 『신을 찾기 위한 투쟁』이라는 독창적 소설을 격찬했다고 한다.
루 살로메의 이지적인 용모의 오묘한 매력은 늘 주위에 정신적, 육체적 동반자들이 따랐고, 그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좋은 작품들을 낳았다. 결혼의 굴레에 매이지 않은 채 온전히 자신의 창작활동을 통해 성공,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지위를 확보했던 능력있는 여성이었다.
살로메가 니체에게 역사적인 철학서를 쓰게 해준데 비해, 살로메가 1880년에 썼다가 2년 뒤에 니체에게 보여준 시 「삶에의 기도」는 비중을 크게 둘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삶에의 기도」에 크게 감명 받아 시를 바탕으로 합창곡을 만들었기에 그의 철학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감동을 주고 있다.
" ··· 그대가 나를 기쁘게 해도 괴롭혀도
그대가 나를 흥겹게 웃겨도 서럽게 울려도
나는그대의 모든 변덕을 사랑하렵니다.
그러나 그대의 운명이 나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진정한 친구가 슬픔을 삼키며 친구를 떠나야 하듯
나도 슬픔을 삼키며 그대를 떠나야겠지요."
하는 가사를 나는 적어 놓고, 살로메를 향한 니체의 마음이 곡 전반에 스며든 애잔하고 숭고한 노래를 듣는다. 외로움보다 더 저리고 쓸쓸한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갖는 실존적 적막감과 함께 비장하고 존엄하기까지 하다.
루 살로메에게서 받은 상처로 위대한 철학서를 쓰게 된 니체. 이후 니체는 건강악화로 대학에서 퇴직, 프랑스의 니스와 스위스에서 머물러 43세와 44세에는 집필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과로 탓인지 44세에 쓰러져 발작, 정신상실자가 되어 56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나이든 지금 생각해보면, 젊어서 창조적인 여성 루 살로메가 부러웠지만 그처럼 지성적인 글을 써왔는가, 또 누군가에게 얽매이지는 않았지만 그처럼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살았는가에는 고개가 저어진다.
니체처럼 실연의 상처로 위대한 책을 쓸 수는 없지만 절망과 외로움으로 상처 입었을 때, 쓸쓸함은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함으로써 더 굳센 인간으로 성숙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니체의 「삶에의 찬가」를 들을 때가 많다. ▩ (p. 30-3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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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자의 음악 에세이 6 『음악의 페르마타』에서/ 2021. 5. 31. <선우미디어> 펴냄
* 유혜자/ 충남 강경 출생, 1972년『수필문학』으로 등단, 수필집『자유의 금빛날개』『사막의장미』『미완성이 아름다운 것은』『꿈의 위로』등, 음악에세이『음악의 에스프레시보』『음악의 알레그로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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