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노선(老仙)의 경지에 이른 잠언시/ 토착어로 살려낸 우리의···서정주 : 박이도

검지 정숙자 2023. 2. 2. 16:35

 

    노선老仙의 경지에 이른 잠언시

     - 토착어로 살려낸 우리의 성정性情, 서정주

 

    박이도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시인은 자신의 토착어로 시를 쓴 한국어권의 대가이다.

  한국인의 국어는 토착어로 되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시인들은 모두가 토착어로 시를 쓴다. 토착어란 역사적 전래의 특정 지역적 한계를 뜻한다. 환언하면 방언이나 사투리 말이다. 서정주 시인이 시로 쓴 말과 어휘들은 토착어로써의 특유한 생명력이 있다. 한국인의 성정을 잘 드러낸 것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기퍼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 햇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언친 시의 이슬에는

  멫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껴 있어

  빛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 (초판본의 원문, 일부 한자에 한글로 음역함)

 

  『화사집花蛇集』 복간에 즈음하여

  내가 젊었던 날의 정열과, 고답高踏과 고독과 절망을 다룬 24편만 ···(중략)··· 대단히 건방지기도 했던 첫 시집 『화사집 의 초판 발행 반세기 되는 해를 맞이하여  ···(중략)··· 정지용 선배께서 『궁발거사窮髮居士 화사집花蛇集이라고 멋들어진 붓글씨로 휘호해 주셨기에 이걸 복간본의 안표지에 넣기로 했다.

    - 1991년 9월 미당未堂

 

  ···(전략)··· 정주가 <시인부락>을 통하여 세상에 그 찬란한 비눌을 번득인 지 어느 듯 오십육 년, 어찌 생각하면 이 책을 묶음이 늦은 것도 같으나 역, 끝없이 아름다운 그의 시를 위하야는 그대로 그 진한 풀밭에 그윽한 향후向後와 맑은 이슬과 함께 스러지게 하는 것이 오히려 고결하였을지도 모른다. ···(하략)··· 

   - 소화경진지추昭和庚辰之秋 김상원金相瑗

 

  [ '시인부락' 동인이었던 김상원이 시집에 쓴 발문(未堂의 시에 대한 인상의 일단이 기술된 부분이다.) ]

 

  내가 미당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자유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에서였다. 1959년 초 수상식 날, 심사를 맡았던 선생님께서는 한복을 입고 참석하셨다. 그날 한복 차림의 인상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나는 그 후 곧 육군에 학보병 신분으로 입대하여 1년 반 만에 귀휴 조치로 제대하게 되었다. 제대 후 나는 공덕동 언덕바지의 선생님 자택을 몇 번 방문했다.

  제대한 다음 군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 「황제와 나」가 한국일보에 당선됐다. 그 당선한 시를 읽고 김광균 시인께서 즉시 시집 『와사등』과 장문의 편지글을 써서 보내 주셨다. 그 시집 속에 끼워 넣은 편지글에는 과분한 격려의 말씀도 적어 주셨다. 나는 제일 먼저 이미 자유신문에서 심사해 주셨던 미당 선생님을 찾아가 그 편지를 보여드렸다.

  그 일이 있은 후에는 미당 선생님께서 김광균 선생의 근황을 묻고 찾아갈 때면 자신의 안부도 전하라는 당부까지 하셨던 적이 있었다. 그 후 편지를 서대문 일대에서 어울리던 문우들, 송상욱, 이제하, 송수남 화가 등이 보고 싶다고 해, 편지를 주었다가 얼마 후에 돌려받으려 했으나 어느 친구 선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는지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다음은 이경철 시인이 쓴 미당 선생님과의 면담한 대목이다.

 

  시인이란 똑같은 소리 되풀이하지 말고 계속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야 되는 것이야. 기웃 기웃거리며 남의 것 좋다 흉내 내지 말고 무엇에도 흔들림 없는 '절대적 자아'를 가지고 끝없이 떠돌라는 것이지. 아직 덜 되어서 무엇인가 더 되려고 떠도는 것이 시이고 우리네 삶 아니겠는가!  

 

  선경仙境의 경지에 든 노선老仙 의 잠언시가 된 면담록이다. 이것은 미당 선생님의 제자인 이경철 시인이 기자로서 대담한 내용을 적시한 것이다.

  미당 선생님은 해방 후 문교부 예술과장, 동아일보 문화부장 등의 직업을 갖고 조선청년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으로도 활약한 이력이 있다. 말년에는 동국대학교 교수로서 후학을 지도해 왔다. 근자에 와서 미당 선생님을 친일 운운하며 한국현대시사에서 소거消去하려는 세력이 있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율배반적 판단이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 (p. 209-212) 

 

 * 블로그註: 육필과 사진 · 시담詩談, 그 외 내용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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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도_육필서명본筆書名本에 담은 시담詩談 『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 2022. 3. 20. <스타북스> 펴냄

  * 박이도朴利道/ 1938년 평북 선천宣川 출생, 1945년 8.15 광복 후 월남, 1959년 ⟪자유신문⟫ 신춘문예 시 & 1962년⟪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63년 <신춘시> & 1963년 <사계> 동인, 시집『회상의 숲』『홀로 상수리나무를 바라볼 때』『민담시집』『있는 듯 없는 듯』 15권, 시선집『빛의 형상』『순결을 위하여』『반추』『삭개오야 삭개오야』『가벼운 걸음』등 6권, 전집『박이도문학전집』(전4권)수필집『선비는 갓을 벗지 않는다』, 평론집『한국현대시와 기독교』, 번역시집『朴利道詩全集. 權宅明역』(일어), <Language on the Surface of the Earth. Translate by Kevin O'Rourke/Chang-Wuk Kang번역>(영어), 대한민국문학상 · 평운문학상 · 문덕수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