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유혜자의 음악에세이『음악의 페르마타』「뒤셀도르프의 가스등」

검지 정숙자 2023. 2. 9. 03:09

 

    뒤셀도르프의 가스등

         브람스의 『피아노소나타 3번』 f장조

 

     유혜자/ 수필가

 

 

  독일의 뒤셀도르프에 들어서면서 우리 일행은 가슴이 설렜었다. 이 도시가 제2차 세계대전에 폐허가 된 독일에 쾰른, 본과 함께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공업도시라는 명성보다도, 슈만 · 클라라 · 브람스의 명곡 탄생지여서 거리마다 골목마다 그들의 뜨거운 숨결이 배어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함부르크 태생 브람스(Johannes Brahm 1833-1897, 64세)는 무명음악가로 돈을 벌던 중 17세 때 함부르크에서 공연하는 슈만 부부에게 그들이 묵는 호텔로 자작곡 악보를 봐달라고 보냈으나 개봉도 안 한 악보를 되돌려받았다.

  얼마 후 함께 연주 여행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레미니의 소개로 만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이 브람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써준 소개장을 들고 브람스는 뒤셀도르프 시립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0-1856, 46세)을 찾아간다.   

  설레면서 찾아가던 그때 브람스의 마음으로 슈만 하우스가 있다는 동네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런데 그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하얀 바탕에 슈만 부부의 얼굴이 그려진 큰 걸개그림이 수리 중인 건물을 가리고 있어서 크게 실망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사실 그 집은 슈만 부부가 1852년부터 1년 반 정도밖에 살지 않았던 집이다. 그러나 슈만은 무명 청년 브람스가 와서 피아노소나타 2번 등 자작곡을 연주하여 풍부한 정서와 깊은 음악성에 감탄한 집이 아닌가. 슈만이 『음악신보』에 「새로운 길」이란 제목으로 '브람스를 베토벤을 이을 음악가'로 소개하고 출판과 그의 진가를 알려주기에 힘썼다니 브람스의 터닝포인트였던 집이다. 또한 브람스는 그 집에 두어 달 동안 머물며 슈만과 함께 산책하고 음악 작곡도 앴다.

  가로수인 마로니에와 플라타너스의 푸른 잎사귀들이 단풍 들기 시작하는 11월의 낮은 짧아서 어둑해진 거리를 내다보면서 브람스가 2년 이상이나 뒤셀도르프에 머물면서 작곡생활을 했다는데 어디에 머물렀을까 궁금해 하며 가는데 저만치 먼 곳에서부터 하나 둘씩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니 백열등이나 형광 불빛이 아닌 레몬 빛 가스등이 거리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현대도시에 전깃불보다 희미한 가스등을 밝혀놓았을까. 독일 낭만주의 작곡 거장인 슈만과 클라라의 빛나는 사랑얘기와, 슈만이 돌아가기 전부터 클라라에 대해 폭풍과 같은 연모에 빠졌던 브람스의 비밀스럽고 어두운 마음이 생각났다. 그리고 뜨거운 마음을 쏟아놓은 것 같은 피아노소나타 3번의 멜로디. 브람스 피아노소나타 3번은 전통적인 소나타가 3, 4악장인 것과 달리 5악장이다. 2, 4악장은 뒤셀도르프에 오기 전에 작곡했고 슈만의 집에 머물던 1853년에 완성했는데 교향곡 형식의 웅장하고 방대한 소나타형식으로 완성했다. 스무 살 청년 때 작곡된 음악이어선지 청년다운 정열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특히 1악장은 장엄하게 시작되는데 고음부터 저음에 이르는 정열적이고 폭발적인 제1주제가 강렬하게 시작되는 것이 인상적이고 제2주제는 서정적으로 시작하나 웅장하게 퍼져서 밝은 분위기로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나는 우리 젊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연주로 들었기에 호쾌하기도 했던 1악장인데 후일 어느 노대가의 연주로 들으니 좀 다른 인상이었다. 2악장은 시테르나우의 시 '젊은 날의 사랑'을 앞 페이지에서 인용하고 시의 느낌을 주는 낭만적인 선율, 3악장은 브람스 특유의 깊이와 힘이 느껴진다. 음울한 4악장은 여행에서 만난 소녀와의 추억을 노래했다는데 불안감을 준다. 쉬지 않고 4악장에서 이어지는 5악장은 웅장하고 화려하게 마무리되는 피아노소나타 3번. 

  스승의 아내이고 열네 살이나 연상인 클라라를 사모한 브람스의 불같은 사랑, 격정적인 폭풍이 이 곡 전반에 표출되고 있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내색할 수 없었던 연모의 정을 작품에 쏟을 수밖에 없었을 브람스. 

  따스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봐주던 슈만에게 최선을 다하면서도 클라라에 대한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슈바벵으로 떠나 산마루 등을 산책하며 마음을 진정시켜보려 했으나 클라라와 떨어져 있자 오히려 지독하게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런 감정을 친구 블로메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고, 함부르크에서 보냈던 긴 사랑의 편지에는 온몸을 다 바쳐 사랑한다고 직접 고백했다. 당시 클라라는 브람스의 열정적인 접근에 상당히 이성적인 태도로 대처했다고 한다. 그런데 슈만이 정신병이 시작되어 라인강에 투신, 자살을 기도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가 돌아가기까지의 2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교환했던 편지를 클라라가 다 없앤 것으로 보아 클라라도 건전하고 잘 생긴 천재 음악가에게 끌렸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슈만이 세상을 떠나자 브람스는 급히 달려왔다. 2년 동안 가장처럼 대소사를 살펴주었고 일곱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밀착되었고, 셋째 딸 율리와 사랑하게 되어 결혼할 뻔도 했으나 클라라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

  희미한 가스등 불빛 아래 출렁이는 라인강물을 보며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의 깊이도 헤아릴 수 없겠다고 느꼈다. 아이들의 문제만은 브람스와 상의했고 브람스는 저명인사가 되어서도 클라라에게 최선을 다한 헌신적인 사랑. 깊은 신뢰와 연민, 깊은 이해심도 라인강물처럼 꾸준히 흐르고 있었다. 빈에서 활동하고 휴양지 이슐에 갔을 때 클라라의 죽음 소식을 들은 브람스는 놀라서 기차를 잘못 탔다가 프랑크푸르트 행 기차로 바꿔 타서 클라라의 장례식에 늦게 도착했다. 그 다음해에 브람스도 세상을 떠났으니 클라라를 따라간 것일까.

  전기등보다 희미한 가스등을 보며 그들이 진정한 사랑이었는지 우정인지 아직도 분명히 이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짐작하라고 가스등을 아직껏 바꾸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장엄하게 건반을  아우르는  1악장의 웅장한 멜로디가 크게 들여오는 것 같았다. ▩ (p. 21-25)

  (2020.)

 

  ----------------------

  * 유혜자의 음악 에세이 6 『음악의 페르마타』에서/ 2021. 5. 31. <선우미디어> 펴냄

  * 유혜자/ 충남 강경 출생, 1972년『수필문학』으로 등단, 수필집『자유의 금빛날개』『사막의장미』미완성이 아름다운 것은꿈의 위로등, 음악에세이『음악의 에스프레시보』『음악의 알레그로토』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