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의 2차 기병을 바라본 삼례(발췌)
신정일/ 문화사학자
석가의 소화신이라 불리웠던 진묵대사震黙大師(1562~1633, 71)는 김제 만경 태생이다. 선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경을 읽는 일로 일생을 마친 그의 행적은 전설로만 남아 세상에 떠돌아 다녔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은고 김기종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모아 초의대사草衣大師에게 전기를 쓰게 했다. 진묵대사와 오랜 교분을 맺었던 김동준의 일기에 "이 분은 중이기는 하나 유림의 행동을 하였으니 슬픈 마음 참을 수 없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진묵대사는 승려로써 불경뿐만 아니라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홀로 된 모친을 전주 왜막촌倭幕村에 봉양하였는데, 도술로 모기를 물리쳤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모친이 세상을 뜨자 애통한 나머지 글을 지었다.
胎中十月之恩何以報也. 태중십월지은하이보야.
어머니 태 가운데에서 열 달의 은혜를 어떻게 보답하랴.
膝下三年之養未能忘矣. 슬하삼년지양미능망의.
슬하에서 삼 년을 봉양해 온 일 잊을 수 없도다.
萬歲上更萬歲子之心猶爲嫌焉. 만세상갱만세자지심유위혐언.
오래오래 사실 줄 믿어 왔는데 자식된 심정 원망스럽기만 하여라.
百年內未滿母之壽何其短也. 백년내미만모지수하기단야.
백 년을 다 살지 못하신 어머니의 짤막한 수명이신가···.
單瓢路上行乞一僧旣云已矣. 단표로상행걸일승기운이의.
도시락 표주박을 허리에 차고 길에 걸식하는 중이 된 신세로
橫杈閨中未婚妹寧不哀哉. 횡차규중미혼매영불애재.
아직도 시집을 보내지 못한 누이동생이 애처롭구나.
上壇了下壇罷. 상단료하단파. 僧尋各房. 승심각방.
불단만 오르내리고, 절간만 찾아다니는 중이 되어
前山疊後山重. 전산첩후산중. 魂歸何處 혼귀하처
첩첩한 산중을 헤매는. 걸자 혼령은 어디 계신지
嗚呼哀哉 오호애재
아아 슬프기만 하여라
어머님에 대한 효성이 극심했던 진묵대사는 그의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만경 북면北面 유앙산維仰山에 장사를 지냈다.
오늘날의 성모암 옆 자린데 그 자리가 연화부수형으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그날 진묵대사는 목수를 불러 현판을 만들고 스스로 붓을 들어 이렇게 썼다고 한다.
"여기 이 묘는 만경현 불거촌에서 나서 출가 사문이 된 진묵일옥의 어머니를 모셨는 바 누구든지 풍년을 바라거나 질병이 낫기를 바라거든 이 묘를 잘 받들지니라. 만일 정성껏 만든 이가영험을 못 받았거든 이 진묵이 대신 결초보은 하리라."
그로부터 그 마을 사람들로부터 봉분封墳을 사초沙草하고 향화를 올리면 영험한 소식이 나서 오늘날까지 참배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진묵 스님은 게를 남겼다.
天禽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하늘을 이불 삼고, 땅으로 요를 펴 놓으니 산은 절로 베개로다.
日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애작준
달은 등불이요, 구름은 병풍이라, 바닷물로 술잔을 하여
大醉居然仍起舞 대취거연잉기무
거나하게 취한 끝에 일어서서 춤을 추고픈데
却嫌長袖崑崙 각혐장수곤륜
곤륜산에 소매자락이 걸쳐지는 아니꼼
또한 그가 임종에 지은 게에는 「··· 또한 정장로에게 소속되다.」(···且屬靜長老 차속정장로)라 하였는데 이는 서산대사 휴정의 문파였음을 엿볼 수도 있으나 불조의 원류에서 그 증거는 찾을 길이 없고 선의 경지에서는 서산을 능가한 대각자라 할 수 있다.
진묵대사는 술을 곡차穀茶라 일컬어 즐기었으며 봉곡과 많은 수창酬唱을 남겼으나 오랜 세월에 흩어져서 전하지 못하고 있다. (p. 23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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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문학』 2022-하반기(14)호 <사료집> 에서
* 신정일/ 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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