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조선시대 문인들이 애호한 악기, 거문고/ 송지원(음악인문연구소장)

검지 정숙자 2022. 6. 9. 01:42

 

    조선시대 문인들이 애호한 악기, 거문고

 

    송지원/ 음악인문연구소장

 

 

  우리 옛 문인들에게 거문고는 악기 이상의 '도'를 싣는 도구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 노주老洲 오희상吳喜常(1763-1833, 70)은 삿된 마음을 금하고 자신을 이기는 방법 중에 거문고 연주가 으뜸이라 했다. 이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거문고의 담담한 선율은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더없이 좋았으니 연주는 정신수양의 방법이었다.

  그런 까닭에 거문고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풍류생활에 필수적인 악기로 자리하였다. 문인들이 가장 즐겨 탔던 악기가 거문고라서, 옛 악보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거문고 악보였다. 조선시대에 거문고 악보집을 펴낸 인물 오희상을 통해 그가 거문고를 애호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자.

  오희상은 어려서부터 잠자는 것을 잊고 공부에 몰두했다. 특별한 스승 없이 형 오윤상吳允常(1746~1783, 37)에게 수학했으나 학문에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여러 벼슬이 내려져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일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나아가지 않았고 대부분의 생활을 학문에 전념했다. 평생을 학문에 몰두한 선비, 그는 당시 거문고 연주로도 세상에 이름이 나 있었다. 그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는 의관衣冠을 바르게 하고 임했다.

  거문고를 대하는 자세는 이미 『한금신보韓琴新譜』에도 나와 있다. '오불탄不彈'이라 해서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아야 할 다섯 가지 상황이 있었다. 첫째, 강한 바람이 불고 심한 비가 내릴 때는 연주하지 않는다. 둘째, 속된 사람을 대하고 연주하지 않는다. 셋째, 저잣거리에서 연주하지 않는다. 넷째, 앉은 자세가 적당치 못할 때 연주하지 않는다. 다섯째,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 연주하지 않는다.

  거문고 연주 태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능五能'이라 해서 연주자가 가져야 할 다섯 가지 자세도 살펴보자. 첫째, 앉는 자세를 안정감 있게 한다. 둘째, 시선은 한 곳을 향하도록 한다. 셋째, 생각은 한가롭게 한다. 넷째, 정신을 맑게 유지하도록 한다. 다섯째, 지법指法이 경고하게 하도록 한다. 이처럼 거문고를 연주할 때에는 다섯 가지 상황과 다섯 가지 태도를 강조하여 연주자가 고려해야 할 내용으로 권장하였다.

  '오불탄'이나 '오능'의 화두에도 드러나듯, 거문고라는 악기는 상징적인 악기이기도 했다. 거문고는 선비들이 늘 곁에 두고 속된 생각이 들거나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을 때 한 음 한 음 타면서 정신을 가다듬곤 하는 악기였다. 오희상은 거문고를 단순히 기교를 연마하는 악기로만 생각하지는 않았고 악기 이상의 어떤 '도'를 싣는 물건으로 인식하였다.

  사람들은 오희상의 거문고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한가로워지며 마음이 훤히 트이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다. 오희상의 거문고는 기교로 연주하는 음악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어 마음으로 연주하는 경지에 이르렀음이 분명하다.

  "거문고의 묘함은 정신에 있지, 소리에 있지 않다"라고 오희상은 평소 말했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데 '정신'에 그 묘함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 손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화합하여 인위적인 소리가 아닌, 몸과 마음이 혼연일체된 소리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거문고라는 악기는, 오희상에게 '도'를 싣는 도구였다. 그의 곁을 지키던 거문고가 그의 벗이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오희상은 세상 사람들이 '마음을 싣지 않고 연주하는' 거문고에 대해 비판했다. 그저 기술적으로 선율을 구분하여 연주하는 음악은 '손가락 끝의 음악'이라 했다. 그는 손가락 끝의 음악이 아닌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오희상의 거문고는 세속의 악기 이상이었고 그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에는 그의 정신이 올곧이 녹아들어 있었다.

  옛 문인들 대부분이 거문고는 정신 수양에 필수적인 악기라 생각했다. 여러 문인들의 표현을 보면, 때론 그와 같은 표현이 일종의 레토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오희상이란 인물이 이야기하는 내용에서는 그 이상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손끝의 음악'이 아닌 '마음의 음악'을 강조했던 조선 후기 문인 오희상의 정신, 지금 이 시대로 가까이 끌어와 새겨볼 만하다. ▩ (p.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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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2-5월(247)호/ <예술의 세계    국악> 에서 

  * 송지원/ 음악인문연구소장 · 국악방송 '국악산책'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