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개옻나무 저 혼자 붉어/ 송은숙

검지 정숙자 2024. 12. 6. 01:13

 

    개옻나무 저 혼자 붉어

 

     송은숙

 

 

  지난봄 숲을 지나온 뒤 우리는 개옻나무의 덫에 걸렸다 혀 밑에 감추어 둔 맹독의 세침에 팔뚝에 붉은 물집이 잡히고 심장의 안쪽이 미친 듯이 가려워질 때 우리는 한숨을 쉬며 저주를 퍼붓고 옻의 귀는 확대경이 불씨를 모으듯 말의 씨앗을 모아 두었다

 

  맨발의 파발꾼이 다급하게 전하는 어떤 밀서를 받았는지 개옻나무 혼자 붉다 벌린 입으로 숨겨 둔 말이 발아하고 수많은 혀가 발화發火한다 발화점을 넘은 말의 덩어리들이 개옻나무에 걸려 있다 독설의 덫에 개옻나무 온몸이 가렵다 

 

  아직 엽록에 잠겨 있는 관목 숲

  금기의 신목神木인 양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다 개옻나무

  저 혼자 붉다

  저 혼자 발화發話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멈춰 선 시인, "개옻나무의 덫"에 걸려 어느덧 "저 혼자 붉"은, "저 혼자 발화"하는 개옻나무가 되었다. 그러니까 멈춰 선 "맨발의" 시인 환상과 타자의 말들을, 즉 "숨겨 둔 말이 발아하고 수많은 혀가 발화"하는 것을 듣지만, "발화점을 넘은 말의 덩어리들이 개옻나무에" 걸려 "독설의 덫에 개옻나무 온몸이 가렵다" 시는 구원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고통인가. (略) '시인  개옻나무'에 맺히는 말들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 없지만, 시인의 고통은 끝날 가망이 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죽도록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무리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천진한 오후의 놀이에서부터 시퍼런 저녁의 걷기를 거쳐 개옻나무처럼 멈춰 선 시인의 시 쓰기가 죽음의 매혹보다, 피멍 든 고통보다 조금은 견딜 만한 무엇이자, 더불어 '의미' 있는 무엇으로 느껴지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온몸이 가렵"지만, "저 혼자 붉"어, "저 혼자 발화"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심장의 안쪽이 미친 듯이 가려워질 때" 충실히 모은 "말의 씨앗"은 우리를 죽도록 살 수 있게끔 해 주는 서정시로 변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삶의 고통을 충실히 통과한 이에게만 서정시는 스스로를 내어 준다. 애초에 죽도록 사는 삶이 불가능한 무엇으로 상정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고통은 어쩌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견딜 만한, 견뎌내고 싶은 무엇일 수도 있을 것 같다. (p.시 62/ 론 146-147) <양순모/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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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열두 개의 심장이 있다』에서/ 2024. 11. 12. <걷는사람> 펴냄

 * 송은숙/ 충남 대전 출생, 2004년『시사사』로 등단, 시집『돌 속의 물고기』『얼음의 역사』『만 개의 손을 흔든다』,  산문집『골목은 둥글다』『십일월』, <화요문학> <봄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