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시 비평의 현재와 '시민성'이라는 문제(발췌)/ 고봉준

검지 정숙자 2021. 9. 16. 19:51

 

    시 비평의 현재와 '시민성'이라는 문제(발췌)

 

    고봉준/ 문학평론가

 

 

  오늘날 비평적 글쓰기를 추동하는 요인들은 비교적 선명하다. (대학과 비평장 모두에서 통용될 수 있는) 상징권력의 획득과 경제적 보상, 즉 원고료가 그것들이다. 그런데 현재의 원고료는 '경제적 보상'은 물론이고 비평적 글쓰기를 자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게다가 대학이 직장인 비평가들에게는 활동하는 비평가의 수가 제한적이도록 만들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등단해 자신의 발화 욕망을 표현하고 상징권력을 획득하는 데 관심을 지닌 비평가들, 그리고 노동문학이나 페미니즘 등처럼 비평적 발화의 수행성을 자신의 사명으로 수락한 일부 비평가들이 바로 그들일 것이다. 이미 '대학'에 진입한 비평가들은 비평문을 학술지에 게재함으로써 승진 등에 필요한 연구실적과 문예지 원고료보다 훨씬 많은 장려금(수당)을 받을 수 있으니 문예지에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대학' 진입을 준비하고 있는 비평가들은 '상징권력'을 획득하는 데 유리한 몇몇 문예지에 한정하여 비평을 씀으로써 이른바 '가성비'를 추구하면 되는 것이다. 사태는 비교적 분명하다. '상징권력'에 해당하는 일부 문예지,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제한적인 지면, 그리고 '대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학술지, 그 이외의 지면에 비평을 쓰는 것이 소모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시 비평,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불러낸 것은 아닐까. (p.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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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1-8월(380)호 <기획성/ 시 비평,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1>에서

  * 고봉준/ 문학평론가,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평론집『유령들』『비인칭적인 것』『문학 이후의 문학』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