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효치
-白骨難忘
정숙자
고쳐, 고쳐 옷깃을 여미고 이 글을 씁니다. 온 세상에 역병이 창궐한 이때 오랫동안 안부도 여쭙지 못했습니다. 마음에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문과 입을 닫다 보니 오늘까지 밀리고 말았습니다.
‘인물시’ 청탁이 왔을 때, 시제가 생존 시인이었으면 좋겠다고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수락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제 안에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동시성이라는 것일까요?
헤아려 보니 ‘인물시’로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첫 번은 저에게 등용문을 열어주신 스승님 「서정주」였고, 두 번째는 시의 세포를 세세히 가르쳐주신 선생님 「김용직」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계간⟪문학나무⟫에서 2009년에 발행한 『사랑했을 뿐이다』와 『노래했을 뿐이다』 1·2권이었는데요, 저의 두 편 ‘인물시’는 제1권에 수록되었습니다. 저승 가서라도 못 잊을 은혜요 사랑입니다.
접때나 이때나 어쩌면 이리도 시의적절한 청탁이 오느냐는 겁니다. 문학은 또 하나의 지구이며 등단은 새로운 출생이 아닐는지요? 그렇게 칠 때 저의 운명적인 인연은 이제 다 뵈온 듯합니다.
등단 30여 년 만에 선생님께서 저를 호명하셨으므로, 저의 피 묻은 문장이 만인 앞에 일경일화一境一花를, 일경이화一境二花를 들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오로라였습니다.
“2019.3.29-18:00, 白骨難忘” 선생님을 생각하며 홀로 앉아 써보았던 숙어를 수첩에서 꺼내어 오늘 다시 아스라이 바라봅니다. 중고등학생 이름표만 한 종이쪽에 매직펜으로 쓴 글자이지만,
절반을 접으면 세모꼴로 세워지는 지비紙碑입니다. 예서체로 뽑느라 오체자전까지 동원했었지요. 그 너른 그늘이야 어찌 다 그릴 수 있겠습니까. 하오나 뼈만 남은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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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사람』 2021-여름(10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