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수선화 같은 시인들
두 시인의 죽음
최문자/ 본지 고문
최근 코로나 위기를 겪믐 시간 속에서 우리는 좋은 시를 쓰는 젊은 시인 두 사람을 잃었다. 김희준 시인(1994-2020, 26세)과 이윤설(1969-2020, 51세)이다.
이윤설 시인은 2006년 신춘문예 3관왕(조선일보, 세계일보, 동아일보)으로 등단하여 시 뿐 아니라 희곡, 영화, 드라마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좋은 작품을 여럿 남겼다. 방송사와 드라마도 계약한 상태에서 암이 온몸에 전이되어 짧은 생을 마쳤다. 임종 전까지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쓰고 있어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고 한다.
김희준 시인은 2017년 월간 『시인동네』로 등단하여 경상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김희준 시인의 활동 기간은 비록 짧았으나 시적 재능과 언어감각이 빛나는 시인이었다. 통영여고 재학 중 총 64회(대상, 장원)나 공식 수상기록을 가졌고 등단 후에도 좋은 작품을 수없이 발표하여 독자들을 매혹시켰다.
시인이 젊어서 죽으면 젊음이나 순결함을 그대로 동결한 것 같은 그 맑음이 언제나 수선화 같은 향을 풍겨 그들이 쓴 작품들은 후세의 독자까지도 매혹시킨다고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말했다.
요절한 윤동주 시비를 보기 위해 나는 우지를 여행한 적이 있다. 우지는 교토에서 가까운 거리인데 늘어선 산자락에 우지강이 길게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 긴 강의 몇 개 다리 중 하나인 아마가세 구름다리에 서서 요절한 윤동주 시인을 생각했었다. 서울 연희전문을 졸업한 윤동주는 1942년 3월, 도쿄의 릿쿄立敎대 문학부에 들어가 다섯 달을 다닌 후 같은 해 가을, 교토의 동지사 대학으로 편입을 한다. 재학 시절 교우들과 우지로 소풍을 갔고 우지강 이 아마가세 다리에서 그는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천재성이 있다는 시인들은 왜 일찍 생을 마감할까? 문학판에서 시인들의 요절은 종종 신화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요절한 시인의 면모가 부각된 글이나 책은 시인들의 천재성을 우리들에게 더 절실하게 접라게 해준다. 아까운 시인들이 젊은 나이에 죽음으로 사라진 일은 한국문단에서도 그 수가 적지 않다. 김소월, 이상, 윤동주, 박용철, 이장희, 임홍재, 박인환, 신동엽, 김수영, 고정희, 박정만, 기형도, 이연주, 진이정, 금은돌······ 그리고 이윤설, 김희준 시인, 이 밖에도 찾으면 더 많이 있을 수 있다.
이 시인들에게 일찍 찾아온 죽음은 공통점이 있다. 살아있을 때보다 그들이 작품이 어쩌면 더 많이 읽힌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문학에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은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죽기 바로 직전 시를 봇물처럼 토해냈다는 사실이다. 이들 시인의 죽음 직전의여러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남아 전해지고 있다.
김희준 시인과 이윤설 시인의 마지막 작품들을 부분적으로 소개해 보기로 한다.
한생이 멈추는 것을 본다
밀고와 열고의 차이를 안다면 동굴을 빠져나와도 좋아 문은 나름의 기준이 있다 틈으로 보았던 것이 은밀하지도 뜨겁지도 않다는 뜻이다
식탁 위에는 여럿의 문양이 있다 부러진 날개와 흩어지는 수레국화, 그해 여름과 두 개의 초승달, 노트르하우젠에서 멈춰버린 시계와 시간을 뭉치는 사람들,
그들은 밋밋한 다리를 가졌다 손가락으로 문양을 문지른다 바스러지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것들
내가 손가락으로 누른 것이 당신이었는지 나였는지 알 필요가 없어졌다
-김희준, 「하지만 그러므로」 부분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리고 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중략)
저 세상이 가깝게 보이는구나
평생을 소리없이 지옥의 내장 하나를 만들고
그것을 꺼내보는 일
앞발로 굴려보며 공놀이처럼
무료하게 맑은 나이를 꺼내어보는 것
피 묻은 그것.
내가 살아보는 것.
너무 밝구나 너무 밝구나 내가 지워지는구나
-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부분
세인의 죽음과는 달리 시인에게 죽음은 오히려 삶 저편 수선화 향기가 나는 신성한 숲속일지도 모른다. 부디 삶의 무거운 중력을 벗어난 곳에서 안 아프고 위험하지 않고 자유롭고 풍성하고 억울하지 않게 그곳의 삶이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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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0-겨울(76)호 <책머리에> 에서
* 최문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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