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정본소고贈呈本小考(부분)
김시철/ 시인 · 한국문인협회 고문
"용평면에서는 선생님 댁에 우편물이 제일 많아요."
언젠가 우체부 아저씨가 한 뭉테기 우편물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들려준 말이다. 적은 날은 한두 권, 많은 날은 네댓 권씩 받은 셈이다. 그중에 팔할은 시집이요 나머지는 수필집이다. 표지면을 들치면 첫눈에 들어오는 정성들여 쓴 글씨. '김시철 선생님 혜존' 그리고 아래쪽엔 '박아무개 근정'이라는 서명이 도장과 함께 찍혀 있다. 헌데 글씨를 보면 어떤 이는 또박또박 정성스레 쓴 글씨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휘둘려 갈겨서 쓴 글씨체도 있다. 이럴 경우, 모처럼 고맙고 반갑게 받아든 증정본이 되려 받아든 이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나 역시 증정본을 보낼 때 그런 심경을 겪은 터라 정중하게 쓰게 된다. 가급적이면 볼펜 글씨보다는 붓펜으로, 그리고 상태가 까마득한 후배가 될망정 '님' 혹은 '사백'. '선생',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달아서 보낸다.
책 한 번 내면 나의 경우 보통 250권 정도의 증정본이 나간다. 받는 비율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지만 그렇다고 여기저기 다 보낼 형편이 못 된다. 그 점이 내가 아쉬워하는 고민거리다.
어떤 이는 서명도 없이 보내온다. 봉투를 보면 분명 내 집 주소인데, 숫제 서명도 없는 책을 받아들 때도 있다. 몇 자 적으면 되는 서명을 생략(?)한 증정본, 이럴 땐 볼쾌감마저 생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보내지 말 일이지 뭣하러 보냈느냐 그것이다. 아닌 말로 무엇 주고 욕먹는 꼴이다.
자, 그럼 받아들긴 했는데 그 답례는 어찌해야 하느냐. 고맙게 받았노라고, 두고두고 잘 읽어 보겠노라고, 뭐 그런 인사치레가 있어야 옳겠는데 그 답신 쓰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고는 대개의 경우 속으로 고맙다는 생각으로 땜질하고 만다.
어떤 이는 시집을 다 읽은 독후감까지 적어서 보내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그중 몇 편의 시를 인용하면서 보낸 이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답신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일찍이 시인 구상具常 선생은, 간결한 인사말과 이름자와 책 이름 칸을 아예 비워 논 엽서를 다량 인쇄해 번거로움을 덜려 했지만 그러나 그건 너무 도식적인 방법이다 싶어서 별로였고, 시조시인이며 수필가인 전주의 최승범崔勝範 교수는 그린 듯한 정갈한 글씨를 한지에 또박또박 써서 보내오고, 또 성춘복成春福 시인은 시집 안의 어느 한 절구絶句를 부채에다 써 넣어 답례하는 경우도 있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보내온 증정본 표지를 들쳐 보니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 이름이 적혀 있다.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시집이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봉투는 본명 우리 집 주소인데 행선지가 바뀐 것이다. 이럴 경우 여러분 같으면 어찌해야 되겠는가. 보낸 이에게 도로 보내서 잘못 보낸 것을 일깨워 줘야 옳은지 한참을 망설이다가그만둬 버렸다. 발송 과정에서 생긴 실수를 무안스레 만들기 싫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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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인』 2020-가을호 <이 계절의 언어> 에서
* 김시철/ 시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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