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박찬호
물어본다고 아는 것도 아니었고
안다고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괜스레 한마디 물어본다
마지막 가을볕은 따가웠고
제법 바람이 차가운 오후에도
당신의 손은 따뜻했다
힐끗 보면 소나무 같고
자세히 보면 잣나무 같은
저 나무에 대해
저 나무의 떨어진 열매에 대해
물으면서도
대답하면서도
우리 서로는 답을 알고 있지만
단답형의 답이 두려워
다시 물음으로 대답했다
뭐지?
글쎄?
마음속 가문비나무는
그렇게 익명의 나무로
그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
-전문-
▶ 구술의 시를 통한 죽음의 관조(발췌)_ 오대혁/ 시인 · 문화비평
가문비나무는 소나무나 잣나무와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사전의 표현으로는 더더욱 구분하기 쉽지 않다. 어원을 살펴보면 '가문비나무'는 한자어 '흑피목黑皮木'에 대응되면서 검은 껍질의 나무라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며, 물고기 비늘 모양의 껍질을 가진 소나무라 하여 ''어린송魚鱗松'이라 했던 한자 이름도 전한다.2) 사전에 제시된 "나무껍질은 비늘 모양의 검은 갈색"이라는 표현과 연결된 명칭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언뜻 보아서는 그 구분이 모호할 수밖에 없다. 모두 소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들이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파악이 쉽지 않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그런 세세한 구분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그리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실제 그것의 구분에 있지 않다. 실은 "물어본다고 아는 것도 아니었고/ 안다고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괜스레 한마디 물어본다"고 하여 일 없는데 일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분별이며, 분별은 곧 지식, 앎의 세계다. 그런데 그 나무들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분별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시인은 분별한다고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분별했다고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 '괜스레' 물어보는 행위를 한다. 그렇지만 그 행위를 통해 가문비나무의 실체를 드러낼 수는 없다. "우리 서로는 답을 알고 있지만/ 단답형의 답이 두려워/ 다시 물음으로 대답했다/ 뭐지?/ 글쎄?"라고 답 없는 문답을 지속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화자는 "마음속 가문비나무는/ 그렇게 익명의 나무로/ 그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라는 표현을 통해 그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는 가문비나무가 속에 존재하며, 가을이라는 시간을 뚫고 지나고 있음을 말한다. 이를 통해 시공간을 지나는 가운데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가문비나무'는 삶의 진실을 표상하는 메타포로 확장된다. (p. 시 18/ 평 27-28)
* 조항범 「나무 이름의 어원에 대하여(1)」, 『국어학(國語學)』78, 국어학회, 2016.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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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 2024-여름(49)호 <책 속의 작은 시집>에서
* 박찬호/ 2020 월간 『시』 & 계간 『미래시학』으로 등단
* 오대혁/ 제주 출생, 2005년『신문예』로 시 부문 등단, 저서『원효설화의 미학』『금오신화와 한국소설의 기원』
『시의 끈을 풀다』(앤솔러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