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에
장충열
물안개의 여운을 좋아한다는 말의 끌림은
나를 휘저어 닫혔던 기억의 문이 열린다
장미보다 안개꽃을 더 좋아하는 이유다
바림이 느리게 문을 여는 계절의 끝에서
초여름의 정열과 마주하며 태양처럼 달구었던
눈빛이 이끄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초콜릿처럼 녹아내리던 흔적은 지워질 수 없는
생의 부분이라는 걸 바람결에 듣는다
가끔씩이라도 되돌리고픈 방부제에 절인 언어
잉걸 스위치가 눌리며 물보라로 부서졌다가
살아나는 안갯빛 신비로운 반란
심장을 두드리는 리듬 따라 한 생이 저물어간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허공에 남겨지는 건 진실이고
시간 따라 지워지는 건
어차피 잊어야 할 퇴색한 그림자다
알면서도 통제를 벗어난 이야기들은
푸른 동심원으로 번진다.
-전문(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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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 여름(94)호 <신작시 2> 에서
* 장충열/ 1996년『월간문학』에 작품 발표로 활동 시작, 시집『미처 봉하지 못한 밀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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