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초여름에/ 장충열

검지 정숙자 2024. 6. 23. 01:36

 

    초여름에

 

    장충열

 

 

  물안개의 여운을 좋아한다는 말의 끌림은

  나를 휘저어 닫혔던 기억의 문이 열린다

  장미보다 안개꽃을 더 좋아하는 이유다

  바림이 느리게 문을 여는 계절의 끝에서

  초여름의 정열과 마주하며 태양처럼 달구었던

  눈빛이 이끄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초콜릿처럼 녹아내리던 흔적은 지워질 수 없는

  생의 부분이라는 걸 바람결에 듣는다

  가끔씩이라도 되돌리고픈 방부제에 절인 언어 

  잉걸 스위치가 눌리며 물보라로 부서졌다가

  살아나는 안갯빛 신비로운 반란

  심장을 두드리는 리듬 따라 한 생이 저물어간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허공에 남겨지는 건 진실이고

  시간 따라 지워지는 건

  어차피 잊어야 할 퇴색한 그림자다

  알면서도 통제를 벗어난 이야기들은

  푸른 동심원으로 번진다.

     -전문(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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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4  여름(94)호 <신작시 2> 에서

* 장충열/ 1996년『월간문학』에 작품 발표로 활동 시작, 시집『미처 봉하지 못한 밀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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