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정채원
옆구리를 들킬까 늘 조마조마했어요
고열로 앓고 나면
꽃이 툭툭 피어나곤 했으니까요
그러다 언제부턴가 얼룩덜룩 움직이더라구요
뭐라 말을 하듯 입술이 씰룩거리듯
그러나 소리는 없었어요
어쩜 내 귀에만 들리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지요
심장이 불타는 사람의 수화처럼
어떤 날은 밤새 숨 가쁘게 움직였어요
눈 없는 벌레처럼 기어다녔어요 꿈틀거렸어요
아무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흉터를 품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걸까요
늘 들킬까 봐 숨기고 다니지만
그래도 믿을 건 그것밖에 없다는 듯
혼자 있을 땐 가만히
손을 넣어보곤 하지요
아직도 날아가지 못했구나
안심하곤 하지요
어쩌면 자기 귀에민 들리지 않는 말들, 남들은 다 듣고도 모르는 척해주는 걸까요 어떤 이 곁에 가면 그가 분명 입을 다물고 있는데도 웅얼거림이 계속 들려와요 듣지 않으려 하면 더 또렷이 들려와요
그저 먼 하늘만 바라보지요
그가 창살로 돌진하다 찢어진 날개로 영영 날아가 버릴까 봐
내 온몸이 상처가 빠져나간 하나의 큰 상처가 돼버릴까 봐
-전문(p. 2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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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하우스』 2024-상반기(창간)호 <시 3부> 에서
* 정채원/ 199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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