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모퉁이/ 전순영

검지 정숙자 2024. 6. 3. 00:36

 

    모퉁이

 

    전순영

 

 

  1

  쇠망치가 달려들어 내리칠 때 쏟아지는 보석

  더 내놓으라고 폭약을 쏟아붓자 그의 몸은 산산이 날아가

  모퉁이에 버려졌다

  백 년이 가버린 지금 그곳에다 붓을 대고 그어 내리면

  비선대가 쭉 올라오고 다시 쭉 그어 내리면

  좌정하고 앉아있는 미륵봉이 솟아오르고

  다시 그으면

  장군봉 허리에는 금강굴을 품고 있는

  병풍처럼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

  그 아래 그림같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호수를 받아먹는

  시든 나무들이 보스락보스락 일어서고 있다

 

  2

  얼음이 얼음을 꼭 보듬은 이월

  솜털이 보송보송한 오엽송이 쭉 뽑혀 내팽개쳐졌다

  물컹물컹 물러진 뿌리를 들고 휘어진 하늘 귀퉁이에 기대서서

  밤과 낮이 물처럼 흘러가고

  얼어붙은 아파리에 와 닿는 햇살에 조금씩 녹아내릴 때

  뇌성 벼락 내리치고 질세라 먹물이 가득 차오르는 밤

  떨며 맨발로 서서 그 밤을 보내고 돌아보니

  새순이 뾰족뾰족···

 

  3

  새순이 열이 오르면 온 밤이 열로 가득 차오르고

  새순이 웃음 지으면 빛으로 가득 차오르고

  새순이 시들면 밤새도록 천리를 걸어서 물 한 바가지

  새순이 배가 고플 땐 만 리 길도 가깝던 하루하루는 구멍이 숭숭

  구멍으로 들이치는 칼바람에

  걷여차여도 그대로

  목을 비틀어도 그대로

  짓밟아 문밖으로 던져버려도 그대로

     -전문(p. 197-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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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하우스』 2024-상반기(창간)호 <시 3부> 에서
 
* 전순영/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숨』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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