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은 없다
원탁희
고구마가 주식이었던
내 유년의 겨울은 참 길었다
눈도 많이 내렸으며
처마 밑 고드름은
땅까지 길게 늘어졌다
먹을 것이 풍부한 지금은
겨울이 하루처럼 지나간다
눈도 내렸다 금방 녹아내리고
처마 밑 고드름은 보이지 않는다
해진 옷과 구멍 난 양말을 꿰매어 신고
눈 내린 조그만 골목길을
검정 고무신으로 내달리던 날들도
호호 언 손을 입에 불다가
겨드랑이 사이로 집어넣기도 하고
처마 밑 고드름 뚝 따내어
입에 넣고 쪽쪽 빨기도 했던 그날들은
이제 없다 그 찬란했던 겨울은
겨울은 겨울답고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는데
이제 그 겨울도 없고
사람다운 사람도 이제는 떠나고 없다
서산에 긴 그림자만 장승 되어 서 있을 뿐이다
-전문(p.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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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4-4월(662)호 <이달의 시> 에서
* 원탁희/ 1996년『시와시인』으로 등단. 시집『세상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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