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 겨울은 없다/ 원탁희

검지 정숙자 2024. 5. 14. 13:28

 

    그 겨울은 없다

 

     원탁희

 

 

  고구마가 주식이었던

  내 유년의 겨울은 참 길었다

  눈도 많이 내렸으며

  처마 밑 고드름은

  땅까지 길게 늘어졌다

 

  먹을 것이 풍부한 지금은

  겨울이 하루처럼 지나간다

  눈도 내렸다 금방 녹아내리고

  처마 밑 고드름은 보이지 않는다

 

  해진 옷과 구멍 난 양말을 꿰매어 신고

  눈 내린 조그만 골목길을

  검정 고무신으로 내달리던 날들도

 

  호호 언 손을 입에 불다가

  겨드랑이 사이로 집어넣기도 하고

  처마 밑 고드름 뚝 따내어

  입에 넣고 쪽쪽 빨기도 했던 그날들은

  이제 없다 그 찬란했던 겨울은

 

  겨울은 겨울답고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는데

 

  이제 그 겨울도 없고

  사람다운 사람도 이제는 떠나고 없다

 

  서산에 긴 그림자만 장승 되어 서 있을 뿐이다

    -전문(p.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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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문학』 2024-4월(662)호 <이달의 시> 에서

  * 원탁희/ 1996년『시와시인』으로 등단. 시집『세상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