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게 전해 듣는 말 외 1편
이규자
수레바퀴처럼 늘어선 국화 다발 속
조문객이 꽃길을 내고 있다
태극기 휘장 고이 덮고
아버지는 96세 일기로 영면하셨다
장기 전투 승리로 이끈 역전의 장수將帥처럼
한 세기 전투 마치고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너셨다
엄마는 혼잣말로
사람 팔자는 관뚜껑 열어봐야 알 수 있다 했다
이승에서 자식들과 마지막 인사 나누고
관 모서리 이해되는 어머니의 말
"칠 남매 자식 앞세우지 않고
배웅해 주는 아내도 있으니
젊은 날 목숨 바쳐 나라에 충성했고
자식들 모자람 없이 키웠으니
이만하면 됐소, 암 됐고말고"
젊은 날, 자랑 같아
전봇대에 대고 귀엣말로 속삭였다는 엄마
금실 좋았던 남편 별 탈 없는 자식 자랑 들으면
누구라도 고개 끄덕여지지 않을까
엄마의 혼잣말 타래
홀로 푸는 중이다
-전문(p.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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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순간
- 맹자와 순자에게 묻다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두 인성론人性論이 입력되는 순간
머릿속은 늘 두 갈래 길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말이 맞는 것 같고
맹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하였고 순자는 "인간의 성품은 악하다, 선한 것은 인위人爲다"라고 하였다
주위 사람이 내게 하는 말
사람을 무조건 좋게 보는 게 탈이란다
선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고 충고까지 한다
나는 처음부터 맹자를 맹신한 것이었다
아니면 순자가 말하는 악어의 눈물을 보지 못한 것일까
맹자왈, 순자 왈 줄 세우며 까만 밤 하얗게 지새다가 만난 고자告子의 성무선악설性無善惡設
인간의 성품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이 말로 타협점을 찾고 나니 스르르 잠이 밀려왔다
-전문(p. 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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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낙타로 은유하는 밤』에서/ 2024. 3. 28. <상상인> 펴냄
* 이규자/ 2003년 『문예사조』로 수필 부문 & 『한국예총』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꽃길, 저 끝에』, 에세이집『네이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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