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전봇대에게 전해 듣는 말 외 1편/ 이규자

검지 정숙자 2024. 4. 27. 01:35

 

    전봇대에게 전해 듣는 말 외 1편

 

     이규자

 

 

  수레바퀴처럼 늘어선 국화 다발 속

  조문객이 꽃길을 내고 있다

 

  태극기 휘장 고이 덮고

  아버지는 96세 일기로 영면하셨다

  장기 전투 승리로 이끈 역전의 장수將帥처럼

  한 세기 전투 마치고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너셨다

 

  엄마는 혼잣말로

  사람 팔자는 관뚜껑 열어봐야 알 수 있다 했다

  이승에서 자식들과 마지막 인사 나누고

  관 모서리 이해되는 어머니의 말

 

  "칠 남매 자식 앞세우지 않고

  배웅해 주는 아내도 있으니

  젊은 날 목숨 바쳐 나라에 충성했고

  자식들 모자람 없이 키웠으니

  이만하면 됐소, 암 됐고말고"

 

  젊은 날, 자랑 같아

  전봇대에 대고 귀엣말로 속삭였다는 엄마

  금실 좋았던 남편 별 탈 없는 자식 자랑 들으면

  누구라도 고개 끄덕여지지 않을까

 

  엄마의 혼잣말 타래

  홀로 푸는 중이다

     -전문(p.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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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의 순간

     - 맹자와 순자에게 묻다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두 인성론人性論이 입력되는 순간

  머릿속은 늘 두 갈래 길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말이 맞는 것 같고

 

  맹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하였고 순자는 "인간의 성품은 악하다, 선한 것은 인위人爲다"라고 하였다

 

  주위 사람이 내게 하는 말

  사람을 무조건 좋게 보는 게 탈이란다

  선한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고 충고까지 한다

  나는 처음부터 맹자를 맹신한 것이었다

  아니면 순자가 말하는 악어의 눈물을 보지 못한 것일까

 

  맹자왈, 순자 왈 줄 세우며 까만 밤 하얗게 지새다가 만난 고자告子의 성무선악설性無善惡設

 

  인간의 성품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이 말로 타협점을 찾고 나니 스르르 잠이 밀려왔다

      -전문(p. 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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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낙타로 은유하는 밤』에서/ 2024. 3. 28. <상상인> 펴냄 

  * 이규자/ 2003년 『문예사조』로 수필 부문 & 『한국예총』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꽃길, 저 끝에』, 에세이집『네이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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