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세포가 기억하는 잠버릇 외 1편/ 김추인

검지 정숙자 2024. 4. 25. 02:34

 

    세포가 기억하는 잠버릇 외 1편

         homo     

 

     김추인

 

 

  새도 외로울 땐

  부리를 날갯죽지 속에 묻어 어미의 심장박동 같은 제 심장 소리에 잠이 든다지

 

  내가 잠을 부를 땐 

  혼자의 잠, 제 오른 손을 베고 왼손을 둘러 목을 감싸 안아야만 잠이 살글살금 눈꺼풀로 내려온다는 것도

  나만 아는 사실

 

  내 잠을 부르는 백색소음, 철썩이는 파도소리도 어린 날바닷가의 잠을 기억하는 탓이지

     -전문(p.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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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세*

        homo consumus

 

 

  사람 여러분

  인간의 힘은 모든 종을 휘하에 두고 호령합니다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애

  인간의 방식으로

 

  한때, 야생의 날지도 못하는 새,

  붉은 들닭이던 우리는

  인류세에 와 인간 여러분과 함께 번영 중입니다 닭들은 맛있게 죽음으로써 번성하는 진화의 방식을 택했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영계에 허기지는 여러분을 위해

  어린 닭들이 연간 650억여 죽어 나가도 차고 넘치는

  닭, 닭, 닭

  우릴 두고 철새라 부르는 이도 있다죠 깃털도 머리도 처낸 채 죽어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새라고

 

  사람 여러분,

  당신들은 고작 30만 년 전 나타나 점령군인 듯 지구를 장악했지만 그래도 이 별에서 다른 종을 염려해주는 유일한 종이라는 것.

    의 부활을 위한 유전자 보관소, 종자저장소 같은 냉동방주 프로젝트를 시행 중인 것은 이기심입니까 이타적 배려입니까

 

  신을 흉내 내고 자기 함정에 빠지는 어리석음 없지 않으나 만물의 영장적 능력, 인정합니다 당부컨대

  인류의 식욕에 편승,

  함께 번성하겠다는 우리 닭들의 지혜도 잊지 마시길!

  닭대가리란 말 잊어주시길!

      -전문(p. 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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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자코메티의 긴 다리들에게』에서/ 2024. 4. 9. <서정시학> 펴냄 

 * 김추인/ 경남 함양 출생, 198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모든 하루는 낯설다』『프렌치키스의 암호』『전갈의 땅』『행성의 아이들』『오브제를 사랑한』『해일』등 10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