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갔다
강경호
하늘에 강이 흐르고 있다
아버지는 그 강물이 우리 지붕 위로 흐를 때쯤
쌀밥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허기보다도 궁금했던 것은
어디에서 발원해
어디로 흘러가는지
유성처럼 죽어가는 것들의 근원이었다
꼬리를 흔들며 하얀 강물이
늦가을, 지붕 위로 흐를 때
강물 아래 기러기 떼 지나가고
뒤이어 좇아가는 길 잃은 기러기처럼
나는 찬이슬 내리는 밤하늘의 하얀 강물 아래로
혼자서 흘러갔다
때로는 밤새 눈짓하고 제 존재를 드러내며
가뭇없이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물소리 들으며
아침이 올 때까지
강물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흘러가는지
우리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하늘을 흐르는 은하수를 보며 혼자 흘러갔다
-전문-
▣ 강, 멈출 수 없는 생명의 흐름/ 강의 수사학(발췌)_강경호/ 문학평론가
화자는 유년을 회상하고 있다. 밤하늘에 은하수가 흐르는데 "아버지는 그 가을이 우리 지붕 위를 흐를 때쯤/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배고픈 시절 화자는 "허기보다도 궁금했던 것은/ 어디에서 발원해/ 어디로 흘러가는지/ 유성처럼 죽어가는 것들의 근원이었다"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보다도 별이 태어나서 유성처럼 죽어가는 생명의 근원과 사라짐에 대한 궁금증이 더 관심사였다. 가을이 되어 은하수라는 거대한 별들이 지붕 위로 흐를 때 가을 추수가 끝나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하늘에 기러기 떼가 지나간 후 무리에서 혼자 떨어진 기러기 한 마리가 북쪽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화자 역시 날이 새도록 "강물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하늘을 흐르는 흔하수를 보며 혼자 흘러갔다."
생명의 근원과 존재의 비밀을 탐구하는 이 작품에서 은하수도 '인간의 삶'도, '뭇 생명들'도 모두 혼자 어디론가 흘러가는 강물 같은 것임을 시인은 사색하고 있다. (p. 시 247-128/ 론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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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호_평론집 『서정의 양식과 흔들리는 풍경』에서/ 2022. 9. 30. <시와사> 펴냄
* 강경호/ 1992년『문학세계』로 평론 부문 & 1997년『현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문학평론집『휴머니즘 구현의 미학』『서정의 양식과 흔들리는 풍경』『문학과 미술의 만남』『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외, 미술평론집『영혼과 형식』, 연구서『최석두 시 연구』, 시집『언제나 그리운 메아리』『알타미라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사람』『함부로 성호를 긋다』『휘파람을 부는 개』『잘못든 새가 길을 낸다』, 소리를 주제로 한 에세이집『내 마음의 소리』, 기행 에세이집『다시, 화순에 가고 싶다』『역사와 생명의 고을, 무안』『화순누정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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