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 쿠다라 간이우편국百濟簡易郵便局*
문효치
여기에서 편지를 부치면
천오백 년 전 고이왕 때쯤
주홍색 달빛이 피어나는 두루마기의
사나이에게 날아갈까
그 사나이의 고운 딸에게나 날아갈까
여기에서 편지를 부치면
먹칠로 막혀 있는 세월 너머
어둠의 완벽한 거부로 닫혀 있는 지하
거기까지 날아갈까
심장에서 데워진 진한 피
그러다가 와글거리는 숱한 독백
손끝으로 흘러내려 박아 쓴······
여기에서 편지를 부치면
저 하늘 끝 아직도 저녁연기 피어나는
비 그친 마을
그 사립문 안에 날아갈까.
-전문- (p. 51-52)
* 쿠다라 간이우편국 : 일본 나라현의 한 시골에 쿠다라 간이우편국이 있다.
▣ 백제시에 나타난 시의식과 백제 표상/ - 죽음 극복과 영원성 추구(발췌)_김기옥(본명,김밝은)/ 시인
아좌태자는 백제 27대 위덕왕의 아들로 일본으로 건너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좌태자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문효치의 백제시는 그런 역사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아좌태자의 정신과 혼이 아직도 그 "붓"에 살아 있다는 상상을 한 것이다. 살아 "몸을 뒤"틀고 있다고 한다.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영원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물에게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물질은 생명이나 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물활론적 상상도 엿보인다. 이런 상상이 가능한 것은 작은 것에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라 할 수 있고 백제 사랑에서 나오는 당연한 결과라고도 하겠다. 그래서 "천오백 년 전 멈추어진 바람이" "처마 끝에 다시 일렁"일 때 백제도 살아나고 문효치의 몸과 마음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다시 생명의 활기로 일렁이는 것이다. 이렇게 문효치는 바슐라르의 표현처럼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일차적 색과 향기만을 파악하는) 감각적 초라함을 해소함으로써 섬세한 뉘앙스와 미묘한 향의 정수를 말할 수 있는 상상력을 드러내게 된다"125)
125) 가스통 바슐라르,『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정영란 옮김, 문학동네, 2002, 99쪽.
인용한 시에서 백제 이미지는 "주홍색 달빛", "비 그친 마을", "사나이의 고운 딸"로 나타나고 있다. 쿠다라 간이우체국은 일본의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우체국이다. 그곳에 "편지"를 부치고 있다. "편지"를 쓰는 나는 "심장에 데워진 진한 피"로 썼지만, 편지가 닿을 그곳은 "저녁연기 피어나는/ 비 그친" 곳으로 백제의 "고운 딸"이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사는 곳이다. 문효치만의 시적 장소이자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영원 지향을 염원하고 있다. (p. 시 51-52/ 론 51·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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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사 학 위 논 문
문효치 시에 나타난 백제 표상 연구 : 김기옥(본명, 김밝은)
지도교수 : 박옥순 (본명, 휘민)
이 논문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2023년 6월
김기옥의 문학 석사학위 논문을 인준함/ 2033년 7월
위원장 : 김춘식
위 원 : 전영주 (본명, 전해수)
위 원 : 박옥순 (본명, 휘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예술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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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옥(본명, 김밝은)/ 시인
* 석사학위논문 「문효치 시에 나타난 백제 표상 연구」(2023. 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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