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목수의 일/ 김민식

검지 정숙자 2023. 7. 9. 02:26

 

    목수의 일

 

    김민식/ 내촌목공소 대표

 

 

  어깻죽지 아래 통증이 멈추지 않는다. 사나흘 전부터는 눕지 않으면 앉거나 서 있기도 힘들다. 지난해 가을걷이를 마치고 산골짝에서 겨우내 '나무일'을 한 때문일까. 나무일이란 산에 서 있는 수종을 구별하여 벌채하고 등급을 나누며 원목을 다듬는 치목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이 과정을 거쳐 손질된 목재는 모양새에 따라 집의 기둥, 들보, 서까래로 또 가구 부재로 사용된다. 목재를 소재로 집 짓는 공인工人은 대목大木, 가구를 만드는 이가 소목小木이다. 우리는 대목, 소목으로 오랜 기간 일한 사람들 중에 특별히 솜씨가 빼어난 목공 장인에게는 존경을 보태어 대목장, 소목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로 목수木手다. 목수는 나무와 손이 조합된 단어다. 손으로 나무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자, 목수. 전래의 대목 혹은 도편수都邊首는 편하고 친근한 호칭 목수로 바뀌었다. 

  나는 한 번도 직업을 바꾼 적 없이 원목과 목재를 다루는 일에만 매진해 온 사람이다. 그런데 누구도 나를 목수라 부리지 않는다. 내 손으로 나무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일까?

  대패와 끌질을 직접 하지 않지만 나는 나무의 겉모양에서 얼추 속살도 본다. 긴 시간이 나무에 관한 인사이트를 내게 주었다. 원목을 어떻게 유용한 목재로 만들 것인가? 용도에 맞게 나무의 두께와 길이를 절단해야 한다. 흔히 좋은 나무, 단단한 나무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 비싼 나무는 있지만 좋은 나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단단한 나무가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악기의 울림통으로는 무른 나무가 필요하다. 그 쓰임에 맞는 나무가 좋은 나무다.

  숲이 아니라 산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내 나무일의 출발이다. 다음은 벌채한 원목의 생김새에 따라 절단할 길이, 두께, 각도를 미세하게 맞추는 작업. 이 과정을 거친 나무를 제재목制材木이라 부른다. 이 시대의 목수는 어디서든 다듬어진 제재목으로 작업을 한다. 건축 현장도, 내장 가구도 제재목을 고르는 것이 목수의 첫 작업이다. 목수 일이 편해졌다. <내촌목공소>는 집을 짓고 가구도 제작한다. 그러니 내 일은 나무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대의 디자인에도 소홀할 수 없다. 도쿄, 밀라노, 런던의 동시대 트렌드와 국내외 건축가, 디자이너들과 늘 열린 미팅을 가진다. 아무리 명성 높은 디자이너들의 빼어난 건축 공간에도 목공소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실 세계적 건축가들도 목재의 쓰임새와 시공 현장의 디테일을 모르기는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언제부턴가, 십여 년은 된 것 같다. 일본, 스위스, 영국의 건축가들이 목재의 적절한 사용에 관하여 강원도의 목공소를 번번이 찾아온다. 매번 마다않고 그들에게 목재 작업 아카이브를 공개했다. 나 역시 그들로부터 디자인 조언을 구하고 수시로 도움을 받는다. 외딴 산골짜기의 목공소지만 세상과 실시간 대화를 놓치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어 즐겁다. <내촌목공소>는 건축 대목일과 가구 제작 소목일을 함께하니 어떤 목공소와도 다른 독특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다. 더하여 전적으로 환경 열악한 강원도 골짜기에서 목공소를 시작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 여러 나라, 또 이웃 일본의 목재산업과 목가공 전문가들 중에 나처럼 북반구, 남반구, 열대우림의 목재를 두 섭렵한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자국산 나무 공급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젊은 목수들이 퇴근한 시간 그리고 주말마다 혼자서 꼬박 대패와 끌질을 했다. 나무 앞에서 벅찬 감동을 누를 길 없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산 참나무, 밤나무, 낙엽송, 우리 산하의 목재를 내 손으로 다듬었다. 신명 났던 대패질에 지금 온몸이 아프다. 목공소 주위 진달래, 산벚꽃 붉고 철쭉, 귀룽나무 흰 꽃은 막 터지려 하는데 어깨와 팔은 통증에 잡혀 올해 봄 산골짝 꽃 잔치는 딴 세상이구나, 목수 쉽지 않다. ▩ (p. 5)

 

  (내촌목공소 대표)   

  -----------------------------

  *  『문학의 집 · 서울』 2023. 5월(259)호 <삶의 나루>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