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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낭케anatkh, 밤의 피크닉상자를 열고/ 김영찬

아낭케anatkh, 밤의 피크닉상자를 열고      김영찬    어떤 밤은 어떤 밤의 피크닉상자를 끼고 덜거덕 덜거덕 졸면서  산음승흥山陰乘興  산음에 흥겨워  스웨기swaggie 스웨거링swaggering  아흐렛날 흩어진 달빛 아래  흘러갈 뿐이다   이런 날  이티비티 티니위니 비터브 타임itty bitty teenie weenie bit of time  흥진이반興盡而反이면 뭘 어떻고   뜬금없는   스웩swag  스웨기swaggie   스웨거swagger들의 실력 없는 거들먹거림   밤을 모르는 부랑아들은 아무도 모르는 밤에 아무것도 모르지 단지   밤을 좋아해야 할 이유를 묵살하고  아, 아낭케ANATKH  밤에  밤의 블랙박스를 발로 걷어차며 삐뚤삐뚤 걷는다  걷다가 허풍쟁이와 만나면 밤길에 ..

AI 할머니/ 윤석산(尹錫山)

AI 할머니     윤석산尹錫山    자손들 모두 대처로 나가  텅 빈 집에, 작은아들이 사다 준 대형 티브이  한 대  마루 한 칸 차지하고 놓여 있다.   참으로 세상 편하게도 되었지.  "진이야!" 부르면  "네" 대답을 하고  "티브이 켜" 하면  이내 "티브이를 켭니다." 대답이 끝나기도 무섭게   화면에는 활동사진이 전개된다.   세상 편한 것도 편한 것이지만,  하루 종일 소리라고는  개미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집.  그나마 사람소리라도 한번 들어보려고  할머니, 오늘도 조심스레  티브이에게 말 거량擧揚을 한다.  "진이야~!"    -전문(p. 187)   ----------------- * 화성 문인 보고서 2 『시인 윤석산』 '일반 시' 에서/ 2022. 9. 28.  펴냄/ 비매품 ..

김현_불빛/ 간섭 : 안희연

간섭     안희연    돌을 태운다  사실은 돌 모양의 초   누가 나를 녹였지?  누가 나의 흐르는 모양을 관찰하고 있지?  돌이 나의 질문을 대신해 주기를 기대했는데   돌은  자신이 초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하다  무고하게 빛난다   돌이 녹는 모양을 본다  돌 아래 흰 종이를 받쳐두어서  흐르는 모양 잘 보인다   너는 시간을 이런 식으로 겪는구나  너는 네게 불붙인 손 사랑할 수 있니   창밖에는 갈대 우거져 있다  횃불 든 사람들 오고 있다   제 머리카락은 심지가 아니에요  발끝까지 알아서 태울 테니 불붙이지 마세요  흰 종이 위에 스스로 올라서서 하는 말   또 한 번의 밤이 지난다  아침이 오면 볼 수 있다   나를 사랑하려는  노력의 모양   굳은 모양을 보면  어떻게 슬퍼했는지가 보..

조광조를 생각함/ 윤석산(尹錫山)

조광조를 생각함      윤석산尹錫山    靜庵 趙光祖가 살던 집터에  지금은 표지석 하나 남아 지키고 있다.  조선조의 선비 정암 조광조 선생이 살던 집터  돈의동, 모든 차량은 돌아가도  좋다는 유우턴 표시가 있는 곳.  매일같이 출퇴근하던 육조전 거리를  코앞에 두고,  지금은 차량들이 돌아가기 위하여  한 번쯤 멈추는 곳.  평생을 멈춤이나 돌아감을 몰랐던,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에  돌지도 또 멈추지도 못하고  다만 죽음을 택한 이름,  지금은 돌아가기 위하여 멈춘 차량들  붕붕거리며 내뿜는 매연 속  한 방울 매운 눈물도 없이  눈 다만 똑바로 뜨고  세상의 얽히고설킴을 바라다본다.     -전문(p. 185)   ----------------- * 화성 문인 보고서 2 『시인 윤석산』 '일반 ..

민조시 고찰/ 김운중(민조시인)

민조시 고찰     김운중/ 한국문인협회 민조시분과회장    민조시 천부경 81글자의 수리를 근거하며 3 · 4 · 5 · 6조의 정형 리듬과 율조에 의한 18자의 시가 곧 동이민족(백의민족)의 민조시 기원이다.   기원 최초의 민조시 「도실가」  기원 1만 2천년 전 마고성에서 백지소라는 이가 소巢의 난간에 열린 넝쿨에 포도를 먹고 깨우침을 얻어 노래를 지었다. 「도실가萄實歌」는 인류가 처음으로 지혜를 얻었지만 자재율을 잃어버려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고 점점 죄악이 커져 신을 노하게 만들었다.   浩蕩兮天地 / 호탕혜천지  我氣兮凌駕/ 아기혜릉가  是何道兮/ 시하도혜  萄實之力/ 도실지력   넓고도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한다   어찌 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다.   - 「도실가」[출처:..

권두언 2024.11.27

칸나가 흐르는 강/ 이현서

칸나가 흐르는 강      이현서    이 붉은 울음은 어디서 태어나나   두물머리 강가  뜨거운 숨결 사이 흘러나오는 몸의 기억들이  빛의 결가부좌 너머 아득한 수궁水宮에 이르면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빛나던 영혼   아득히 퍼지는 물그림자를 따라 가만히 입술을 달싹이면  꿈의 자장을 밀고  강과 하늘의 경계가 지워지고  불현듯 무색해지는 시간의 궤적  고요의 소용돌이를 따라 슬픔의 지느러미가 돋아나요   저문 꽃잠 속에서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던  통증으로 각인된 다정한 속삭임처럼  또 하나의 행성이 자라기 시작해요   내 안에 갇혀 있던 오래된 등고선을 따라  물살을 꽉 움켜쥔 손아귀를 풀면  저만치  찰랑, 수면을 깨뜨리는 흰나비 한 마리  소실점 밖으로 사라지는 한 점 구름     -전문(p. 91..

왜 이러지?/ 송예경

왜 이러지?      송예경    사방에서 몰려드는 바람   블랙홀이 아닌데  흔적도 없이 응축되고  바람에 딸려 들어간 것들은  아우성으로 퍼져 나온다.  불덩이로 솟구치는 중심점은  무색의 분출고  폭풍도, 폭우도, 폭염도 무색하게  모두 타 버려도  한 줌의 재조차 남지 않아  회오리바람처럼  넋이 돌고 돌아 사라지고   다시 사방에서 몰려드는 바람   섬뜩함에 몸서리치고  신음소리에 잠에서 깨니  사방에서 몰려오는 어두움  아직 한밤중인데  어제의 불편했던 마음이  꿈에 반영된 건가   갑자기 온갖 잡음들이  달려들어 귀를 파고드는데  귀를 막으려는 손은 마비되어  귀까지 가는데 수 백 초가 걸리고  잡음들은 그 사이 굉음으로 변하여  맹렬하게 분출한다.   왜 이러지?  악마가 찾아왔나?  아니..

아버지의 등/ 하청호

아버지의 등      하청호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들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전문(p. 37)    --------------------  * 『월간문학』 2024-9월(667)호 중에서  * 하청호/ 1943년 영천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72년 ⟪매일신문⟫ &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1976년 『현대시학』 시 부문 추천, 동시집『빛과 잠』『잡초 뽑기』『무릎학교』『초록은 채워지는 빛깔이네』『말을 헹구다..

또 다른 소통/ 이섬

또 다른 소통      이섬    관심과 파장이 드세게 밀어닥치는  황톳길을 맨발로 걸었다  조금 차갑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소통이 순조로운 듯  거부감이 없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밟히는  황토흙의 입자들  발바닥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부드럽게 해준다   언제부터였더라  내 생각의 전두엽을 짖눌러 대던  고집스러움,   다 내려놓기로 한다  버릴 건 버리고 채울 건 채워서  맨발걷기로 나와  소통하기로 한다.    -전문(p. 51)   --------------------  * 『월간문학』 2024-9월(667)호 에서  * 이섬/ 전북 정읍 출생, 1995년 ⟪국민일보⟫로 등단, 시집『누군가 나를 연다』『향기나는 소리』『초록빛 입맞춤』『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황촉규 우리다』『고요의 맥을..

소금 반도체/ 김순진

소금 반도체     김순진    문인들의 번개모임에 나갔는데  한 원로 작가께서 저서 두 권과 소금 한 봉지를 주신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건네니  소금을 선물로 주는 분이 다 있느냐며 신기해한다  술이 깬 새벽 물 먹으러 거실에 나왔다가    식탁 위에 올려진 소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소금은 파도의 기억을 온몸에 새기고  태양의 뜨거움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분수로 밀어 올린 혹등고래의 산통産痛과  태풍을 잠재운 심연의 슬기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소금은 하루에도 수만 번을 철썩이며  뭍을 동경하던 파도의 소원이었을까  멸치며 정어리 고등어의 지느러미에 채인  미세한 파도의 떨림이 알알이 기록되어 있다  주꾸미와 오징어 낙지의 많은 발로 주무르고 매만진  물의 포말이 고스란히 정제돼 고형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