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206

시 교육에 있어서 은유, 상징, 알레고리의 위상(발췌)/ 이현승

시 교육에 있어서 은유, 상징, 알레고리의 위상(발췌) 이현승/ 시인 문학적 수사로서 은유와 상징은 이미 언어의 영역 안에서 설명되는 것이지만, 은유 자체가 서로 다른 두 관념의 차이성을 전제로 한다면, 상징은 이 차이가 힘을 잃고 근원적인 지시성만을 남길 때(권혁웅의 표현으로는 독립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휠라이트가 강조하는 지속적인 반복은 은유를 상징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은유와 상징을 구분하는 오세영의 변별도 지금까지의 논의와 일치한다. 첫째, 은유의 경우 보조관념과 원관념이 될 수 있는 것들로는 관념과 사물이든 상관없지만 상징의 경우 원관념은 항상 관념이고 보조관념은 사물이다. 둘째,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에 있어 은유는 일회적이지만, 상징은 반복적이다. 셋째, 상징은 일관성을 갖고 있다. ..

한 줄 노트 2021.05.29

문학을 하는 이유(발췌)/ 신규호

中 문학을 하는 이유(발췌) 신규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일상 언어의 한계는 작품을 창작하려는 문인, 예술가들에게 그것을 극복하고 초월해야 할 당위성을 부여한다. 표현하고 싶은 남다른 복잡, 미묘한 생각과 느낌을 지닐수록 기존의 언어를 초극해야 한다는 운명에 놓이기 때문이다. 작가 중에는 창작 과정에서 언어 초극의 정도가 구극에 이르면, 아예 언어 질서를 무시하게 되어 '해체'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무의미시나 해체시, 누보 로망, 앙띠 로망(반소설), 추상화, 팝 아트, 아르누보, 전자음악, 현대극 등 문학과 미술, 음악의 모든 영역에서 최대한 언어 질서를 벗어난 난해한 작품을 창작하기에 이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술이나 음악의 경우에도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작품의 번호, 제작 일자 등..

한 줄 노트 2021.04.21

오민석_『몸-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 109, 223, 363쪽 읽기

비평선 『몸-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 109, 223, 363쪽 읽기 오민석/ 시인, 문학평론가 ▣ 엘리엇(T. S. Eliot)은 「전통과 개인적 재능」에서 "새로움이 반복보다 낫다"고 말한다. 모든 새로움은 반복되면서 '전통'이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술가에게 전통은 새로움이 도약하는 스프링보드 같은 것이다. 새는 기압의 힘으로 날고 배는 수압의 힘으로 뜬다. 저항해야 할 벽이 없이 탄성은 생기지 않는다. 벽을 향해 날아간 공만이 강력한 탄성으로 되 튀는 법이다. 전통의 벽이 없이 개인적 재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모든 개인적 재능은 '개인' 주체의 '재현'이 아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인이 아니라 시이며, 사람이 아니라 언어이다. 시인은 시를 '만드는', 즉 생산하는 자..

한 줄 노트 2021.04.20

시는 어떻게 미래를 만들고 있는가(발췌)/ 박동억, 안지영, 임지훈

시는 어떻게 미래를 만들고 있는가 ▣ 이른바 우리 시대를에 일반화된 '혐오'가 단순히 정치적 갈등이나 세대 차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감정 소모에 지나지는 않을까. 여기에는 인본주의 사회로부터 물본주의 사회로 이행해 가면서 발생한 근본적인 관계 양식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보다 기계와 더 많이 교제하며, 앞으로의 세대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격의 실감은 차츰 희박해져 가고 있을 뿐더러 인격의 가치를 역설하는 사상가 또한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특별한 고뇌 없이 증언할 수 있는 우리 시대에 대한 일반론이다.(p-86)/ 박동억>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는 이 아무것도 아닌, 오직 형식에 불과한 무엇이 소중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실..

한 줄 노트 2021.04.20

6 · 25 전쟁과 공군입대(발췌)/ 현승종

▣ 6 · 25 전쟁과 공군입대*(발췌)/ 현승종(1919-2020, 101세) 1950년 6월 25일 아침 뉴스는 인민군(북괴군)의 남침 소식을 긴급히 전파로 전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또 다른 불행을 예고하였다. 38선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민심은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1950년이 단기로는 4283년, 이것을 거꾸로 읽으면 38선이 이사(24)를 하는 해라는 말도 생겼지만, 남한으로서는 군인이 있을 뿐 그 군인이 가져야 할 군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당하는 불의의 봉변이라 38선은 삽시간에 무너졌고, 후퇴하는 군인과 남부여대男負女戴의 피난민이 줄을 이어 남하하는 참상이 전개되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우리나라에 군사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북한 군사제재안이 가..

한 줄 노트 2021.04.13

이현승_『계간 파란』2021년 봄호 권두 에세이(발췌)

아, 복수는 나의 것(발췌) 이현승 복수나 복수심을 모티프로 하는 시를 쓰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복수는 단순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것이 아니고 형편껏 눈에 이, 이에 눈 같은 것도 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방향의 복수이다. 복수가 되갚는 것이라면 그것은 무언가 능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극기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복수 중의 복수이다. '반드시 갚는다'는 나의 신조 중의 신조이다. 오죽했으면 나는 복수심 때문에 볼테르의 책을 몽땅 사고 작품을 찾아 읽을 정도였다. 볼테르는 복수심이 강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런 문장 하나가 볼테르에게 흥미를 가지게 했다. 볼테르를 흠모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이없겠지만, 나는 볼테르에게서 나와 거의 일치하는 형질의 복수심을 봤다. 나는 만상을..

한 줄 노트 2021.03.27

피렌체의 역설/ 곽병찬

1) 피렌체의 역설 곽병찬/ 언론인 형제여, 아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까? 사방팔방이 온통 비탄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아니 이런 세상이 오기 전에 차라리 죽었어야 할 것을. 남아 있는 것이라곤 빈집과 폐허가 된 도시뿐, 사람은 그림자조차 볼 수 없고, 들판은 너무 좁아 시체를 다 묻을 수도 없고, 온 세상은 정적으로 뒤덮여 두렵기만 하구나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들이. - 이탈리아의 시인페트라르카의 편지, 1348년 5월, 피렌체에서 중세 신정체제를 지배한 것은 신과 신을 대리한다는 교부였다. 대리인은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앞세워 권력을 행사했다. 교구민은 오로지 교부의 말을 믿고 따라야 했다. 의심을 해서도 안 되며, 이의를 제기해서도 안..

한 줄 노트 2021.02.25

예술 속에서의 시간과 상상(발췌)/ 신상조

예술 속에서의 시간과 상상 신상조/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비평 비평은 시를 매개로 근거 있는 상상을 한다. 비평이 X값을 푸는 인수분해의 공식처럼 무언가를 대입해서 시를 분석한다는 생각만큼이나 허황한 믿음도 없을 것이다. 시를 상상하는 비평 중에서도 '상상력'을 주제로 하는 김현 선생의 평론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想像力과 人間』(1973, 一志社)이라는 저서에서 한국 현대시에서의 상상력을 동적 이미지와 형태적 이미지를 산출하는 두 가지 능력으로 명쾌하게 구분한다. 흥미롭다는 것은 그가 형태적 이미지를 상상하는 능력의 조건으로 '물건을 지나치게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을, 그리고 동적 이미지를 산출하는 능력의 조건으로는 '물건을 충분히 소유했던 과거의 경험'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

한 줄 노트 2021.02.08

시간과 상상의 플랫폼『상상인』의 창간과...(발췌)/ 전해수

시간과 상상의 플랫폼 『상상인』의 창간과 새로운 문예지의 역할 전해수/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문예지는 300여 종에 이른다. 여기에 각종 문예 단체의 기관지를 더하면 더 많은 숫자가 포함될 것이다. 이 중 대형 출판사가 간행하고 있는 문예지는 약 20여 종으로 축약된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1919년에 창간된 『창조』가 순수 문예지인데 『창조』는 김동인과 주요한이 중심이 되어 자비로 출판한 동인지 형태의 문예지였다. 소수가 참여한 자비출판이었기에 지속되는 경비 문제로 대중에게 확산되지 못하고 9호로 종간되었지만 주요한의 「불놀이」 등 근대문학의 역사를 밝히는 주요 작품이 발표되어 여전히 『창조』는 최초의 순수 문예지란 수식어 외에도 역사적인 문예지로 기억된다. 『창조』..

한 줄 노트 2021.02.08

언택트 시대와 문학의 미래(발췌)/ 이성혁

언택트 시대와 문학의 미래(발췌) 이성혁/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21세기 들어서 디스토피아 문학이나 영화가 성행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좀비 영화의 성행을 상상해보라. 디스토피아 문학이나 영화는, 가장 번창하고 있는 듯한 현재의 자본주의 문명의 실상을 뒤집어 까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을 물어뜯는 좀비들. 이들이 지금 경쟁 체재를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디스토피아 문학이나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 내장되어 있는 공포와 우리 삶의 이면을 본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의 상황은 문학이나 영화가 보여준 디스토피아가 현실화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선진국 미국에서 시신들이 집단 매장되고, 이탈리아에서는 환자의 ..

한 줄 노트 2021.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