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예술 속에서의 시간과 상상(발췌)/ 신상조

검지 정숙자 2021. 2. 8. 23:36

 

    예술 속에서의 시간과 상상

 

    신상조/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비평

  비평은 시를 매개로 근거 있는 상상을 한다. 비평이 X값을 푸는 인수분해의 공식처럼 무언가를 대입해서 시를 분석한다는 생각만큼이나 허황한 믿음도 없을 것이다. 시를 상상하는 비평 중에서도 '상상력'을 주제로 하는 김현 선생의 평론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想像力과 人間』(1973, 一志社)이라는 저서에서 한국 현대시에서의 상상력을 동적 이미지와 형태적 이미지를 산출하는 두 가지 능력으로 명쾌하게 구분한다. 흥미롭다는 것은 그가 형태적 이미지를 상상하는 능력의 조건으로 '물건을 지나치게 소유하거나 소유하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을, 그리고 동적 이미지를 산출하는 능력의 조건으로는 '물건을 충분히 소유했던 과거의 경험'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다소 길지만 그의 글을 인용해보려 한다. 

 

  동적 이미지와 형태적 이미지는 상상력이 나타나는 두 패턴이다. 두 패턴으로 상상력이 작용하는 것은 과거의 흔적에 의한 것인 듯하다. (중략) 그러나 그 이상이나 이하를 산 사람들에게는 물건이란 감정을 자극하는 애완물이 아니면 신경을 건드리는 자극적인 필수물이다. 그러한 물건들의 모습은 그런 사람들의 정신 깊숙이 인각印刻되어, 하나의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과거란 세간이 많은 집과 같은 것이다. (중략) 여기 있는 유리병은 옛날 다락방에 있던 사기병의 한 변이이다. 지금의 어떤 것은 반드시 과거의 어떤 형태와 결합한다. 그 과거의 깊숙한 곳에는 흔적의 원형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 그 원형은 과거를 배열한 집이며 경험의 한 극점極點이다. 모든 경험이 그 원형으로 귀환하여 과거의 형태를 이룬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형태적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다.

  반대로 우리가 동적 이미지를 산출하는 능력이라고 부르는 경우에 있어서는 경험의 극점極點이 형태를 얻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정신의 안벽을 격렬하게 스쳐 지나간 '어떤' 힘에 의해 자극될 뿐이다. (중략) 하나의 예를 들면, 형태적 상상력은 가령 난다는 것을 파악할 때, 우선 자기가 경험했던 어떤 것, 어렸을 때의 다락방에서 쥐고 놀던 장난감 비행기나 혹은 전쟁터에서 본 B 29의 폭격 광경을 추출해낸다. 그러나 동적 상상력은 그것을 '위대함의 초월'로서 파악한다. (77~78쪽)/ (p. 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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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1-1월(창간)호 <기획특집_시간과 상상>에서

   * 신상조/ 2011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