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상상의 플랫폼 『상상인』의
창간과 새로운 문예지의 역할
전해수/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문예지는 300여 종에 이른다. 여기에 각종 문예 단체의 기관지를 더하면 더 많은 숫자가 포함될 것이다. 이 중 대형 출판사가 간행하고 있는 문예지는 약 20여 종으로 축약된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1919년에 창간된 『창조』가 순수 문예지인데 『창조』는 김동인과 주요한이 중심이 되어 자비로 출판한 동인지 형태의 문예지였다. 소수가 참여한 자비출판이었기에 지속되는 경비 문제로 대중에게 확산되지 못하고 9호로 종간되었지만 주요한의 「불놀이」 등 근대문학의 역사를 밝히는 주요 작품이 발표되어 여전히 『창조』는 최초의 순수 문예지란 수식어 외에도 역사적인 문예지로 기억된다.
『창조』의 동인지 성격에서 벗어나 일반 독자를 상대로 출판된 문예지는 『조선 문단』(1924)이다. 『조선 문단』은 (출판비 면에서는 예외 없게도) 소설가 방인근이 사비로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00여 페이지의 종합문예지로 출발했으며 원고료를 정식으로 지불한 최초의 문예지였다. 이 외에도 『조선 문단』은 신인을 발굴하는 추천 등단제도를 사용했고, 문학의 현장을 진단하는 자리를 만들어 (당시에는 합평회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좌담회나 특집의 역할을 이미 선보이고 있었다. 현대에 이르면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문학사상』과 같은 주요 문예지가 1970년대 이후에 간행되었고, 『현대시학』, 『시문학』, 『심상』이 오래된 시전문 문예지로 꼽을 수 있겠다. 이처럼 문예지는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며 오늘날까지도 매체로서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학 초창기부터 오늘날의 문예지로 역사를 이어온 그 의의는 높이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문예지는 판매부수가 떨어지고 구독자가 줄며 제작비와 원고료의 부담으로 지속적인 발간이 어려운 현실에 처하니 그 점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문학의 위기는 그러므로 문예지의 위기를 대변해온 것도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문예지는 대중적인 독자층이 필요하다지만, 비영리적 문화운동을 실천하는 기능을 지닌 것이기도 해서 발간 자체만 해도 그 의의가 높다고 생각한다. 현재 문예진흥기금으로 문예지를 후원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필요한 문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문학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문예지의 발간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보태어, 문예지의 문학적 위상이 한국문학의 위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출범하는 『상상인』이 21세기 문학을 선도하며 장기적으로 꾸준히 출판저널로서의 기능을 다하는 유수有數의 문예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지금-여기, 『상상인』 출발의 의미는 현재형으로서의 문학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매체로서의 소명감을 다하는 데에 있다. (p. 35-36)
----------------
* 『상상인』 2021-1월(창간)호 <기획특집_시간과 상상>에서
* 전해수/ 2005년 『문학 · 선』으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 『목어와 낙타』 『비평의 시그널』 『메타모포시스 시학』, 현) 상명대 인문과학 연구소 연구교수
'한 줄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렌체의 역설/ 곽병찬 (0) | 2021.02.25 |
---|---|
예술 속에서의 시간과 상상(발췌)/ 신상조 (0) | 2021.02.08 |
언택트 시대와 문학의 미래(발췌)/ 이성혁 (0) | 2021.02.08 |
가파른/운명의 경사(傾斜) : 함성호 (0) | 2021.01.17 |
큰 바위 얼굴(발췌)/ 너새니얼 호손 : 이현주 옮김 (0) | 2021.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