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충만/ 정숙자 신기한 충만 정숙자 가을의 고독은 오히려 충만이다. 가을의 고독은 자기 상실이 아니라 자기 회복이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물들고, 떨어지고, 뒹구는 풍경은 우리의 잠재의식에 충격을 가한다. 시적인 감상 의 통로를 훨씬 지나면 오래 전에 저장된 무의식이 있다. 가을 은 그 무의식계..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25
삶과 환상/ 정숙자 삶과 환상 정숙자 삶이 환상일 수 없듯이 환상이 삶이 될 수 없노라 또박또박 정확하게 걷지 않으면 빠지고 마는 수렁 위의 다리 위를 우리는 걷고 있다 제 삶의 테마가 희극인지 비극인지도 모르는 채로 우리는 저마다 환상의 간주곡을 듣노라 삶이 환상일 수는 환상이 삶일 수는 없지만..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24
이오와/ 정숙자 이오와 정숙자 아침 햇살 비쳐드는 가을 숲길입니다. 저는 이오와 함께 산책 을 합니다. 낙엽이 밟힙니다. 주위엔 키 큰 나무들이 즐비합니 다. 어린 이오*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를 흔들며 좋아합니 다. 낙엽도 고운 까닭에 밟지 않으려 하지만 피해 디딜 수 없을 만큼 많이 떨어져 있..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23
수레/ 정숙자 수 레 정숙자 행복을 실은 수레가 길을 갑니다. 자갈길, 언덕길, 굽잇길을 지날 때마다 수레는 덜컹거리며 행복을 떨어뜨립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레는 낡고 행복은 옆으로도 밑으로도 새어나갑니 다. 삐걱거리던 수레는 어느 날 부서지고 맙니다. 수레는 이제 지상의 길이 아닌 망각의..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19
죽마우/ 정숙자 죽마우 정숙자 아,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옷깃바람이 말합니다 바빴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바빠도 그렇지 어떻게 죽마우를 잊을 수 있었어요? 햇빛이 말합니다 죄송해요 잊은 건 아니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영영 못 보는 줄 알았어 낙엽이 어깨에 떨어지며 말합니다 아니, 벌써… 기..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19
바위와 풀꽃/ 정숙자 바위와 풀꽃 정숙자 나 어릴 때 고향에 살 때 아주아주 약한 풀잎 보았었네 너무도 큰 바위에 눌려 겨우겨우 살고 있었네 그러나 아침이면 보석처럼 이슬을 달고 생명과 태양을 노래했네 풀잎은 온힘 기울여 뿌리 속에 향기를 모두었네 이윽고 꽃이 피고 씨가 여물고 기다리던 가을이 왔..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18
첫눈 무렵/ 정숙자 첫눈 무렵 정숙자 글쎄요 예전에는 훨씬 눈이 많았던가 보아요 이른 아침 학교 길에 무릎이 빠지는 건 예사였지요 저의 집은 산자락 오두막이었는데 수북수북 눈 쌓인 소나무며 새와 쥐의 조그만 발자국들은 눈철에만 볼 수 있는 신의 선물이었습니다 공책이나 연필을 바꾸기 위해 호주..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17
저축통장/ 정숙자 저축통장 -나는 군인의 아내- 정숙자 강원도 송정- 벌써 십 수년 전의 추회다 이사의 고생됨이야 군인가족 모두 겪고 아는 일인데 새삼 되읽고 싶은 생각이 없고 그 아름다움을 관조하고 싶다 꽃다운 나이에 애기 둘을 데리고 솔밭 속 외딴집으로 혼자서 짐을 옮겼었지 서방님 목소리라도..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16
노을/ 정숙자 노을 정숙자 “엄마 하늘도 춥나봐 빨개졌어“ 노을진 길 위에 북풍이 일고 냇물이 쉬어갈까 어는 저녁에 母子는 눈 내리는 뚝길을 간다. -------------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13
고독과 사랑의 갈증-鄭淑子의 詩世界-/ 채수영 고독과 사랑의 갈증/ 蔡洙永(시인, 문학평론가) -鄭淑子의 詩世界- Ⅰ. 프롤로그 詩는 인간 정신의 온도계뿐만 아니라 社會 변화를 반영하는 온도계 구실도 한다. 시인의 관심이 어디에 모아지느냐의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양태의 시를 생산하게 된다. 즉 철저하게 개인적인 관심의 用處..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