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삽화/ 정숙자 행복의 삽화 정숙자 이른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눈 쌓인 풍경을 바라보는 서정은 행복하다 젖은 얼굴을 닦으며 화장대 앞에 앉았을 때 지나가는 거위 소리를 듣는 평화는 행복하다 거닐고 싶어 대문을 나섰을 때 우체함 속의 편지를 받는 경이는 행복하다 자정 가까이 전등빛 다정해질 ..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24
사랑하는 사람만이/ 정숙자 사랑하는 사람만이 정숙자 사랑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사랑 으로 채우지 않고서는 작은 기쁨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 무 엇인가를, 그 누구인가를 사랑하고만이 아름다운 자기 모습과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어떤 이이든 그는 폐인..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23
행복/ 정숙자 행복 정숙자 말조차 잊을까 보아 몇 번씩 몇 번씩 외워본다. -------------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22
혼자 읽는 편지/ 정숙자 혼자 읽는 편지 정숙자 여전히 당신을 벗이라 부릅니다만 아마도 그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가봅니다 외로울 양이면 마음 속 깊이 메아리치는 당신의 아픔 이 세상 무엇으로써 제 영혼을 이토록이나 도취케 하고 깨어나게 하겠습니까 마당에 무수한 토끼풀꽃을 보석인 양 한 줄에 꿰어 당..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20
당신의 침묵 안에/ 정숙자 당신의 침묵 안에 정숙자 못 다 드린 마음의 말은 당신의 침묵 안에 넣어둘게요 창문 밖 별 하나 그리워질 때 조금씩 조금씩 읽어보셔요 제일 아름다운 마음의 말은 서투른 붓에 차마 어려워 그 누구도 엿볼 수 없는 마음 그대로 넣어둘게요 침묵은 깊넓은 그릇이어서 무엇이든 담아도 넘..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18
전보/ 정숙자 전 보 정숙자 여름이면 벌써 저는 당신이 보낸 가을전보를 받습니다 애인의 기별인 양 작별할 애인의 기별인 양 반갑고도 서러운 통보 뭉게구름 부푼 하늘이 한순간에 아슬히 높아 뵙니다 마당엔 아직 분꽃이 뜨거운데 영혼은 청랑한 노래를 듣습니다 제때에 와도 외로운 가을 이제 어찌..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17
가을이 오거든/ 정숙자 가을이 오거든 정숙자 가을이 오거든 알려다오 지옥처럼 닫힌 문을 열고 나아가 끝내지 못한 마지막 한 소절 노래를 부르리니 가을이 오거든 알려다오 화가들에게는 색채를 시인에게는 영감을 철학자에게는 사유를 깊게 하는 가을이 오거든 알려다오 어디선가 잃어버린 그 무엇이 가을..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16
문/ 정숙자 문 정숙자 풀벌레 하나 둘 텃밭에 울면 고독이 출렁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마음에 있어서도 텅텅 비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유리알 같은 투명 온 누리를 표구하고픈 서늘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우리의 서정과 고독은 왜 이리도 가을에 약한 것일까요 가을이 드나드는 문 있다면 그 문..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15
꿈을 위하여/ 정숙자 꿈을 위하여 정숙자 나의 외로운 꿈을 위하여 그대여, 두 손을 모아다오 첫 아침이 밤보다 더 무서워 소름으로 열리는 하루 또 하루 나의 쓰러지는 꿈을 위하여 죽어도 아니 죽을 꿈을 위하여 그대여, 무릎을 모아다오 이슬 맺힌 성호를 그어다오. -------------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14
전원시/ 정숙자 전원시 정숙자 누구의 이름을 떠올리겠는가 쓸쓸함과 다정함과 초연미를 지닌 낙엽 길을 혼자서 조촐히 소요할 때 지나간 날과 오늘, 모르는 날의 갈피에서도 암송하고픈 시편과도 같이 해마다 해마다 가슴에 걸 등피 속의 애틋한 불빛 하나 눈길에서도 불길에서도 품어 간직할 이름 하.. 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2012.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