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바위와 풀꽃/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2. 3. 18. 00:54

 

 

     바위와 풀꽃

 

      정숙자

 

 

  나 어릴 때

  고향에 살 때

  아주아주 약한 풀잎 보았었네

  너무도 큰 바위에 눌려

  겨우겨우 살고 있었네

  그러나 아침이면

  보석처럼 이슬을 달고

  생명과 태양을 노래했네

  풀잎은 온힘 기울여

  뿌리 속에 향기를 모두었네

  이윽고

  꽃이 피고 씨가 여물고

  기다리던 가을이 왔네

  씨앗들을 친절한 바람을 타고

  자유로이 자유로이 날아갔네

  이듬해엔

  더 많은 풀꽃이 피고

  더 많은 씨가 익었네

  아주아주 약한 풀잎은

  누구보다 강했었네

  드디어

  방방곡곡 풀꽃이 피고

  그 씨앗들의 자유만큼은

  바위로도 억누를 길이 없었네

  나 어릴 때

  고향에 살 때

  아주아주 약한 풀잎 보았었네

  그러나 지금도 바위 밑에는

  어느 풀잎 그날있으리라네.처럼

 

    -------------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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