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살아남기/ 최금진 서울에서 살아남기 -대학 새내기들을 위하여 최금진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통성명을 할 때 돌아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일단 무조건 거만해야 한다 엔젤이라고 발음하는 너의 콩글리시에는 천사가 살지 않는다 서울에 천사가 있다면 그건 CCTV일 것이다 아르바이.. 잡지에서 읽은 시 2011.01.05
효자손/ 이정오(등단작) 효자손 이정오 할머니의 문갑 위에 조그맣게 구부러진 손이 있습니다 참새의 손입니다 이박삼일 수학여행을 떠난다며 밤새 조잘대던 새 한 마리에게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해진 만 원짜리를 펴 주머니 속에 꼭꼭 넣어줍니다 흰 꽃 앞에서 경계의 눈빛만 반짝이던 고양이 한 마리 한참 동안 당신의 사각.. 잡지에서 읽은 시 2010.12.08
금요일과 토요일 사이/ 황희순 금요일과 토요일 사이 황희순 은밀한 곳에 연못 하나 만들어 쏘가리, 메기, 붕어, 안국사 처마 끝 청동물고기, 부석사 목어까지 잡아다 풀어놓는 거야. 한 1년 공들이면 손맛 당기지 않을까? 고놈들 통통하게 살 오르면 내 옆구리 살점 미끼로 한 마리씩 낚는 거야. 낚은 건 절대 놓아주지 않아. 미끼에 .. 잡지에서 읽은 시 2010.12.07
쓰나미 쓰나미/ 장정자 쓰나미 쓰나미 장정자 빙산의 일각이란 말 무심코 보이는 것만 보았다면 난파선이지 맹그로브나무를 다만 시야를 흐리는 이파리로 보아 베어버렸다면 물밑 그 빽빽한 ��리의 숲을 보지 못한 것 환한 바다가 여과 없이 눈을 황홀하게 할 그 때 스멀스멀 바다 밑 뿌리 쪽이 허물어지고 있을 때, 그 위.. 잡지에서 읽은 시 2010.12.06
별 닦는 나무/ 공광규 별 닦는 나무 공광규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 잡지에서 읽은 시 2010.11.23
감꼭지에 마우스를 대고/ 최금녀 감꼭지에 마우스를 대고 최금녀 내 몸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를 따내온 흔적이 감꼭지처럼 붙어있다 내 출생의 비밀이 저장된 아이디다 몸 중심부에 고정되어 어머니의 양수 속을 떠나온 후에는 한 번도 클릭해본 적이 없는 사이트다 사물과 나의 관계가 기우뚱거릴 때 감꼭지를 닮은 그곳에 마우.. 잡지에서 읽은 시 2010.11.22
옛집/ 장석주 옛집 장석주 참외모종보다 더 어여쁜 것들아, 청산 아래 나와 푸른 귀 열고 앉은 내 새끼들아! 돌 속 캄캄한 데를 한없이 걸어 들어가면 거기 내 피붙이들, 바로 너희들이구나! 당신 쇄골 위 오목한 자리에 고인 그늘을 본다. 슬픔은 나약하지 않다. 저녁밥상 물린 뒤 나는 아령을 하고 당신은 체로 가난.. 잡지에서 읽은 시 2010.11.20
떠도는 구두/ 강서완 떠도는 구두 강서완 해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물의 마을엔 문패가 없다. 애꿎은 초목들만 혼쭐난다. 조석으로 핏물이 번지는 수면. 물의 마을엔 날카로운 이빨의 짐승이 살아 날마다 누군가 피를 흘리고 죽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물의 마을 주민 몸에 비린내가 배어 있어 햇빛이 냄새.. 잡지에서 읽은 시 2010.11.18
저 곳 참치/ 최호일 저 곳 참치 최호일 참치를 보면 다른 별에 가서 넘어지고 싶어진다 동그란 깡통 참치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녔는지 깡통 속에서 살이 통통하게 쪘는지 지느러미와 내장이 없다 참치는 좀 더 외로운 모습으로 진화해 온 듯하다 먼 훗날 비행접시를 타고 바닷가에 내린 어느 외계인처럼.. 잡지에서 읽은 시 2010.11.16
우유부단 외1편/ 김상미 우유부단 김상미 나는 27층에서 일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27층에 내리면 긴 복도 중간쯤 내가 일하는 곳이 있어 그곳에서 나는 잡지나 책에 실릴 글들을 다림질해 주거나 잘못 쓴 글들을 수선해줘 때로는 통째로 다시 써야 할 때도 있어 그럴 땐 정말 죽고 싶어져 뻔뻔하게 닳고 닳은 교활.. 잡지에서 읽은 시 201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