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시집의 기원 외 1편/ 조재형

검지 정숙자 2021. 2. 3. 02:39

 

    시집의 기원 외 1편

 

    조재형/ 시인

 

 

  시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고, 시인이 된 것은 불운이었다. 내가 아는 시인들은 모두가 고독이라는 이상한 지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이다. 그들은 수백만 개의 반란 바이러스와 의심과 불만의 질병을 몸에 지닌 채 거짓말을 훔치러 진실을 뒤지고 다닌다. 그들은 다들 몸속 깊은 곳에 커다란 슬픔을 감추고 있다. 슬픔보다 더 깊은 강 하나씩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다. 굽이치는 내면의 강에서 범람하는 슬픔을 대신 저장해둘 적절한 집을 찾고 있다.

 

  누군가는 그 공간을 시집이라고 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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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

 

 

  늙어가는 집을 시골에서 찾았다. 오래전 타계한 피상속인 명의로 등재된 집은 망자보다 더 늙었다. 워낙에 폐가라서 허물고 다시 짓는 편이 나을 듯싶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집을 나간 뒤 소식이 없다. 저승의 노인이 가옥대장에 둥지를 틀고서 이승의 집을 지키는 중이다. 떠난 주인의 남아 있는 상속인을 찾아냈다. 그 형제들에게 번갈아 연락을 시도했다. 다 쓰러져가는 집이라 시세라는 것이 형성될 리 없다. 집값보다 개보수 비용이 몇 곱절 더 들어가게 생겼다. 그렇다고 거저 넘겨달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당국이 멋대로 매겨놓은 공기가액을 값으로 쳐주겠다고 넌지시 제의했다.

  그놈의 가격이라는 것이 매수인으로서는 지급하기 아까운 금액이고, 옛 주인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서운한 금액이렷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유년의 서사가 송두리째 담겨있는 대하소설 같은 전집인데···. 상속인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집이 털리건 넘어가건 안중에도 없다. 우선은 쳐주는 집값이 뜻밖의 횡재라는 눈치이다. 인수하는 나도 세월의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팔려 가는 유기견처럼 집의 모양새가 애처로운데, 정작 주인집 도령은 서운한 기색을 안 보인다.

 

  집은 이제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제 속에 자신을 맡긴 채 추억을 옹호하는 데만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거쳐 간 식구들의 흔적을 그 몸 안에 지니고 있다. 집을 바라보는 이들은 두 부류로 갈라졌다. 하나는, 재산 가치로 보는 사람이다. 귀신이 뛰쳐나오게 생겼다고 손사래를 친다. 내 어머니와 통장님이 그들이다. 또 하나는, 추억의 깊이로 헤아리는 사람이다. 마을 사람 누구라도 만나게 되면 칸칸마다 품고 있을 사연을 캐묻는다. 나외 뜻을 같이하는 동인이 그들이다. 양쪽 모두 집의 속내와는 무관한 평가이다. 하지만 집은 그 어느 쪽도 포용하리라는 자세이다.

  나는 끝도 없이 집을 향해 묻고 또 묻고 싶어진다. 왜 여태껏 쓰러지지 않고 나를 기다려 왔는지. 집이 나를 통해 어떤 꿈을 이루려는지. 월척을 낚아 횡재한 나는 집의 몰골에서 측은지심을 읽는다. 화려한 칼라로 길든 나에게 흑백의 담백한 세계를 제공한다. 어떻게 늙어가야 하고, 어떻게 침묵해야 하며, 어떻게 낮아져야 하는지 집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온갖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짐승처럼 집은 생명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한때 사람을 안고 키웠던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다. 문패가 그 흔적을 대변하고 있다. 내부의 모든 장기가 기능을 멈추고 마지막 숨결처럼 바람이 약하게 드나든다. 바람마저 한 점 없다면 집은 사망신고가 내려질 것이다. 근력을 거의 상실한 집에서 턱수염처럼 자란 잡초가 반갑기까지 하다. 스피커를 점검하듯이 대문 안쪽에 대고 말했다.

    아무도 없어요?

    저기요. 아무도 없느냐고요!

  아무도 없다는 걸 증명하듯 아무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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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문집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에서, 2021. 1. 11. <소울앤북> 펴냄

    * 조재형/ 전북 부안 출생, 2011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지문을 수배하다』 『누군가 나를 두리번거린다』, 검찰 수사관으로 일하다 문학에 대한 갈증으로 퇴직, 해가 뜨면 법무사로 일하고, 해가 지면 글을 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