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346

나의 님아!/ 김소엽

나의 님아! 김소엽/ 시인 향기만 남겨두고 떠나가신 나의 님아 꽃은 어느 곳에 숨어 있는가 향기는 내 안에 살고 있는데 당신은 어인 일로 말이 없는가 향기만 뿌려 놓고 가신 나의 님아! -전문- 나의 인생에서 그 사람과의 아름다운 여행의 추억이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별 없는 하늘과 같고 꽃이 없는 지구 같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와의 유럽 여행의 20일간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부터 40년 전의 일이다. 내가 모래사막 같은 인생의 40년 광야길을 그래도 대과 없이 걸어온 것은 보석같이 빛나는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982년도 프린스턴 대학에 남편이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이다. 그곳에서 잠시 틈을 내어 그렇게도 동경했던 유럽 여행을 갔다. 영국을 경유해서 프..

에세이 한 편 2022.09.01

바다는 기후위기다/ 반기성(케이웨더 예보센터장)

바다는 기후위기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기후정의와 기후구원이라는 간극 사이에/ 외눈이 여신인 히쿨레오Hikule'o가 존재한다/ 그녀의 머리는 검은 뿌리로 헝클어져 있고/ 그녀의 배 안에는 하늘의 아이들이/ 지구가 오래된 만큼이나 갈색 빛을 띠는/ 그들의 눈물은 '우리 안의 바다'이다/ 나의 배 속에/ 달의 히나Hina여신이 흐느낀다 -프린세스 세 고야(Frances C koya, 「간극의 밀도The Desity of Va」부분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은 삶의 위기를 느낀다. 이들은 이라는 이름 아래 기후 운동을 벌인다. 여기에 속한 섬나라 아티스트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그들의 언어로 울부짖는다. 26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서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에세이 한 편 2022.08.12

생태페미니즘 문학을 부른다/ 구명숙

생태페미니즘 문학을 부른다 구명숙/ 시인 · 숙명여대 명예교수 가부장제의 남성 지배 사회는 개발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왔으나, 결국 자연의 파멸을 초래하게 되어 많은 문제를 낳았다. 생태페미니즘(Ecofeminism)은 그러한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억압과 인간중심주의에 바탕을 둔 서구문명의 모순을 극복하고 자연과 여성을 하나로 보려는 생명 사상에서 출발한다. 여성문제와 생태계의 문제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인식 속에서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의 만남을 통해 생태페미니즘이 생성된 것이다. 생태페미니즘은 모든 형태의 불평등 지배와 억압 착취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인종이나 민족, 계급 또는 종교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누구나 생명의 존재가치가 평등함을 일깨운다. 생태페미니즘에서 가부장제란 단순히 남성중심주의..

에세이 한 편 2022.08.11

마른 목선(木船)에 기대어/ 오민석

마른 목선木船에 기대어 오민석 마른 목선에 기대어 생각한다 (서해는 왜 이렇게 죄다 쓸쓸한 거야) 한때 불구였던 생 삐걱대던 소리마저 즐거웠던 청춘은 어디로 갔나 푸른 수염만이 허망하게 자라고 어제는 또 하나의 꽃이 졌다 가을 햇살 속에 벌써 얼음이 언다 서글퍼라, 내 안의 불이여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지는 노을 위로 점점이 생애를 이고 있는 구름 마취된 심장이여 그래도 가야 할 길이 있다면 그것은 거품 같은 그리움 가다 가다 마침내 다 함께 저무는 수평 속에서 아득하게 수직을 꿈꾸는 것 그리하여 이 바다에 눈 내리면 다시 와 서툰 사랑을 끝내 견디리 -전문, 에세이 「예술가들과」中 (p. 258-259) ----------------- * 오민석 에세이 『나는 터지기를 기다리는 꽃이다』에서/ 2022. ..

에세이 한 편 2022.08.08

오민석 에세이『나는 터지기를 기다리는 꽃이다』/ 금세 그리워지는 것들

금세 그리워지는 것들 오민석 인피니튜드* 앞마당의 자줏빛 사계국화꽃들이 태양을 향해 일제히 옆으로 쏠려 있다. 느티나무 그늘을 피하려는 아우성이다. 햇빛이 잘 드는 할아버지의 집 현관 오른쪽에 있는 채송화들은 똑바로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색색의 연필로 가득 찬 크레파스 통 같다. 채송화들은 저녁이 되면 꽃잎을 닫았다가 아침이면 다시 문을 연다. 꽃의 운동성을 지배하는 것은 태양이다. 꽃들은 햇빛의 향방에 매우 민감하다. 마치 태양신을 숭배하는 사제들 같다. 어제는 단국대학교에서의 강연 때문에 먹실골을 잠시 떠났다. 죽전 집에 오니 아파트 안에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산속에 있다 나오니 이런 풍경이 낯설다.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임을 절감한다. 강연의 제목은 '거인..

에세이 한 편 2022.08.08

오민석 에세이『나는 터지기를 기다리는 꽃이다』/ 책상 위에서 도래할 세계

책상 위에서 도래할 세계 오민석 K가 드디어 책상을 완성했다. 그제엔 도우러 갔다가 구경만 하고 올라왔는데, 어제는 그래도 일을 좀 했다. 책상을 다 짠 후 K가 의자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는 동안 원목 책상에 투명한 오일스테인을 발랐다. 붓이 자나갈 때마다 나뭇결이 더욱 선명해진다. 붓은 돋보기처럼 나무의 속살을 앞으로 당기며 또렷이 드러낸다. 샌드페이퍼로 갈아 비단처럼 부드러워진 나무의 촉감이 시각의 층위로 서서히 옮겨진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나무 안에 숨어있던 이데아Idea는 점점 더 물질성을 갖게 되고, 정신은 천천히 최고의 집중 상태를 향해 간다. 그림을 그릴 때와 매우 유사한 과정이다. 목공일에는 그 자체의 쓸모와 무관한 쾌락이 있다. 고막을 찢는 듯한 전기톱 소리, 드라이버로 나사를 박..

에세이 한 편 2022.08.08

조선시대 문인들이 애호한 악기, 거문고/ 송지원(음악인문연구소장)

조선시대 문인들이 애호한 악기, 거문고 송지원/ 음악인문연구소장 우리 옛 문인들에게 거문고는 악기 이상의 '도道'를 싣는 도구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 노주老洲 오희상吳喜常(1763-1833, 70)은 삿된 마음을 금하고 자신을 이기는 방법 중에 거문고 연주가 으뜸이라 했다. 이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거문고의 담담한 선율은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더없이 좋았으니 연주는 정신수양의 방법이었다. 그런 까닭에 거문고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풍류생활에 필수적인 악기로 자리하였다. 문인들이 가장 즐겨 탔던 악기가 거문고라서, 옛 악보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거문고 악보였다. 조선시대에 거문고 악보집을 펴낸 인물 오희상을 통해 그가 거문고를 애호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자. 오..

에세이 한 편 2022.06.09

지렁이가 기어간 자국/ 진기환(중국고전번역가)

지렁이가 기어간 자국 진기환/ 중국고전번역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부모님께서는 설날이면 동네 아무개 할아버지한테 세배하고 오라고 시켰다. 친척도 아니었고 가까운 이웃도 아니었지만 다만 칠십이 넘은 노인이었기에 세배를 드려야만 했다. 지금 나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두보杜甫의 시구詩句를 넘어 팔십이 가까운 지금, 어떤 젊은이가 내게 세배를 온다면? 그럴 리도 없겠지만! 내가 받겠나? 천만에! 천만의 말씀이다. 6 · 25전쟁 중이던 1953년 4월, 일곱 살에 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남들보다 짧게 14년을 학교에서 배웠고, 남들보다 많은 42년간을 학교에서 살았다.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는 일이 배움이었고 공부가 곧 나를 깨우치고 키우는 방편이자 삶이었다. 가는 붓으로는 작은 글씨를 ..

에세이 한 편 2022.05.29

내가 사는 집/ 사공정숙

내가 사는 집 사공정숙 늦가을에 서울을 벗어나 세종으로 거처를 옮겼다. 겨울로 가는 길목이었지만 낯선 고장은 따뜻한 날씨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신생 도시의 초입부터 만난 가로스는 나지막한 키에 볼품이 없었으나 가난한 가지마다 고운 단풍잎을 반쯤 매달고 있었다. 이제 하나, 둘 잎이 모두 떨어지면 나목으로 이어진 거리의 풍경은 쓸쓸해질 것이다. 그럼 나는 안으로 움츠러들 터이고, 둥지를 찾아드는 텃새처럼 새로운 보금자리에 더 잘 적응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집을 정돈하고 가꾸며 멋지게 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 가는 꿈을 꾸었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집,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원하는 조망을 갖추고 넓고 쾌적한 실내에 고급스런 가재도구로 장식하기란 소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에세이 한 편 2022.05.05

왜 퇴계의 삶을 들여다보는가/ 김석

왜 퇴계의 삶을 들여다보는가 김석/ 시인 서당 훈장의 맏따님이셨던 어머니는 네댓 살로 기억되는데 당신이 무릎에 나를 뉘시고 호롱불 아래서 천자문天字文을 자장가처럼 불러주셨다. 중학생 이후 나는 유일신 기독교 신자로 살아왔다. 그러던 중 불혹 가까운 나이 가을이었다. DNA라 할까, 퇴계철학退溪哲學과 『주역周易』을 붙잡게 되었는데 이것은 혈영맥血靈脈으로 천자문 자장가로 나를 재워주셨던 어머니의 음덕이라 생각한다. 퇴계 이황李滉(1501-1570, 69세)은 7개월 핏덩이일 때 진사進士이셨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당시 양반 자제들의 학교격인 향교鄕校나 서당도 다니지 못하였고, 6세에 마을 노인에게 천자문을 배웠고, 12세에 부사父師였던 숙부를 통해 『논어論語』를 잠시 공부했을 뿐 거의 자학자습이..

에세이 한 편 20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