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유치/ 조원효 라스트 유치 조원효 현상수배 됐던 마지막 유치가 빨간 동굴 앞, 치과에 있는 하얀 옷의 사나이에게 당했다. 그 사나이는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인지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눕히더니 지금의 내가 먹고 생활하는 것을 물어보았다. 그의 뒤엔 그의 부하들인지 그의 말에 ..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16
눈망울/ 조원효 눈망울 조원효 순수한 소녀는 눈망울이 아담하다. 그녀의 눈망울엔 토끼가 산다. 귀엽고 작은 토끼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자상한 아버지의 눈은 듬직하다. 그의 눈망울엔 거북이가 산다. 따뜻하고 큰 거북이가 나에게 칭찬을 한다. 개구쟁이 친구의 눈망울이 정겹다. 그의 눈망울엔 강아지가 산다. 웃..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16
슬픔의 맛/ 손현숙 슬픔의 맛 손현숙 -안다는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안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중에서 오스만제국의 세밀 화가들은 신이 보았던 그대로 세상을 그리려고 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50년 동안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대부분은 장님이 되고 말았다 반복해..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08
일상이 이긴다/ 손현숙 일상이 이긴다 손현숙 외식하고 집에 와서 찬 물김치로 입가심했다 거북했던 옷 활활 벗듯 그제야 속이 좀 편안하다 다니던 길로만 다니고 먹던 음식만 먹고 입던 옷을 입어야 마음 놓이는,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도 돌아갔다 더듬이를 겨우 내밀어 불륜 같은 사랑을 하고 제각각 ..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08
북어/ 김문억 북어 김문억 먼 바다 주유천하 바다엔 길이 없어 물을 떠나 뭍으로 출가를 했다 태백 준령을 넘어 수도를 시작했다 알몸으로 눈비를 맞으면서 금식으로 비대한 살을 뺐다 꼬챙이로 꾹꾹 몸을 찌르며 쏟아 붓는 잠을 쫓아내고 속박을 벗기 위해 내 몸을 속박했다 부릅뜬 눈으로 소리치면서 뼈와 가죽만..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06
질경이의 노래/ 김문억 질경이의 노래 김문억 꺾어지기 싫어서 키 크기를 포기했다 얼굴 들기 싫어서 땅 바닥에 엎드려 산다 그 누가 나를 밟기 전에 미리 내가 나를 밟고 산다 처음부터 땅을 믿고 온몸으로 붙잡았다 올려다보는 것은 해 하나면 족하다 하지만 외로운 건 싫어서 길섶에서 살고 있다. *김문억 시조집 『하나+..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06
누선(淚腺) / 송재학 누선(淚腺) 송재학 내가 우는 게 아닙니다 징이 우는 게 아닙니다 귀 기울이는 당신도 울고 있지 않지만 울음은 모두를 감싸고 돕니다 비에 씻기는 울음입니다 내가 불타는 것입니다 징이 불타면 결국 당신은 불타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겁니다 울음 우는 강과 소지(燒紙)하는 돌의 경계는 은은합니..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06
눈물/ 송재학 눈물 송재학 눈물이 말라버렸다 너무 오래 눈물을 사용했다 물푸레나무 저수지의 바닥이 간당간당, 물푸레나뭇잎도 건조하다 일생의 눈물 양이 일정하다면 이제부터 울음은 눈물 없는 외톨이가 아니겠는가 외할머니 상가에서도 내 울음은 소리만 있었다 어린 날 울긋불긋 금호장터에서 외할머니 손..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06
새/ 손택수 새 손택수 점 하나를 공중에 찍어놓았다 점자라도 박듯 꾸욱 눌러놓았다 날갯짓도 없이, 한동안, 꿈쩍도 않는, 새 비가 몰려오는가 머언 북쪽 하늘에서 진눈깨비 소식이라도 있는가 깃털을 흔들고 가는 바람을 읽고 구름을 읽는 골똘한 저, 한 점 속으로 온 하늘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 시집 『나무의 ..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06
풍선인형/ 손택수 풍선인형 손택수 나는 거리의 춤꾼 잔칫집이 있으면 어디서나 춤을 추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껑청한 키로 나른한 허공을 마구 붐비게 해주지 이벤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허리를 꺾었다 폈다, 어깨를 끝없이 출렁여대지 한번은 허수아비 대신 논가에서 춤으로 새들을 쫓기도 했어 뽑..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