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죽음
혼다 히사시(本多 寿)
혼다 히사시 시인이 ⟪아사히(朝一)신문⟫에
「잊지 못할 문인수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시와 함께 추모의 글을 게재(기억의 숲에서 262회)했다.
(본문 56쪽)
부고는
제비보다도 빠르게 하늘을 건너왔습니다
바다에도
초록빛 대지에도
그림자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건너왔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기쁘게 만나는 것,
그 광경이야말로 마음에 새겨지는 절경입니다
그렇게 알려주셨던
문인수 시인의 부고
대한민국 경상도 대구의 어느 거리에서
단 한 번 만났지만
마음 따뜻하고 서로 술 좋아해서
금세 의기투합했었지요
쾌청했던 그날
우리는 낮부터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태양을 밀어내고
달과 별을 불러들였습니다
어느새
그가 좋아하던 오백나한五百羅漢까지 끼어들어
하나가 된 우리는
길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재회를 약속했건만
그 후로 더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만남
하지만 천 번 만난 사람보다 더 가깝게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습니다
나는 문인수 시인과의 하룻밤을
관에 담지 않겠습니다
꽃으로 장식하지도 않겠습니다
맑은 두 눈을 감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술을 마실 때마다
꼭 불러내서
같이 대작해 달라 하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전문-
▶ 문인수 시인과 혼다 히사시 시인의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만남(발췌)_ 한성례/ 시인
문인수 시인과 혼다 시인은 만나서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절친한 옛 친구를 만난 듯 의기투합하였고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시와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인수 시인은 술을 마시던 중에 잠깐 기다리라며 집에 돌아가 자신의 시집과 선물을 가져올 정도로, 두 시인의 마음은 단박에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단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천 번을 만난 것처럼 혼다 시인의 마음속에 문인수 시인이 남아 있었다. 혼다 시인은 문인수 시인을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워 이야기하고 싶다고 종종 말했다.
혼다 시인은 "나는 예전부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기쁨은 그 어느 것에도 비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좋은 시를 만나, 그 시를 읽는 즐거움이 하나 더 보태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럼에도 하나 더 욕심을 부려 본다면, 만나서 기쁜 사람과 시를 논하며 대작할 수 있는 맛있는 술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아무리 비애로 가득한 세상일지라도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견뎌 낼 수 있다. 문인수 시인은 나의 이러한 생각을 '절경'이라는 언어로 한껏 증폭시켜 주었다. 사람과 사람이, 즉 마음과 마음이 물처럼 한순간에 표면장력을 일으켜 하나가 되는 것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없을 것이다."라고 ⟪아사히(朝一)신문⟫에 추모 글에 썼다.
이 두 시인의 만남이야말로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만남이다.
(···)
혼다 시인은(······). 1988년 아버지가 마당에서 불을 피우다 옷에 불길이 옮겨 붙어 불에 타 숨진다. 1989년에는 시의 스승이나 다름없던 형이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 굴러 떨어져 급사한다. 슬픔을 이겨내며 아버지에 대한 만가挽歌와 같은 시 「바다의 말」을 써서, 1991년 '이토세이유상'을 수상한 후, 죽음과 마주하여 「과수원」 연작시를 써 내려간다. 이를 묶어 낸 시집 『과수원』으로 1992년 제42회 'H씨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문학상으로 시의 '아쿠타가와상'이라 불린다.
혼다 시인이나 문인수 시인은 시인으로서도, 인생으로서도 결코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날 대구에서 두 시인은 같은 통점에서 통증을 감지하고, 그 아픔을 나눠 가졌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시 세계에 감응하던 두 시인의 눈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시 59-61/ 론 56-57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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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2021-가을(77)호 <특별기고>에서
* 혼다 히사시(本多 寿)/ 1947년 미야자키현(宮崎縣) 출생, 시집 『과수원』 『시로 읊조리다-기억의 숲에서』 등 다수
* 한성례/ 1986년 『시와의식』으로 등단, 시집 『실험실의 미인』 『웃는 꽃』, 일본어 시집 『감색치마폭의 하늘은』 『빛의 드라마』, 인문서 『일본의 고대 국가 형성과 만요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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