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문신_시는 혐오를 모른다(발췌)/ 나무꾼이 잠에서 깨기를 : 파블로 네루다/ 고혜선 옮김

검지 정숙자 2022. 3. 18. 23:33

 

    나무꾼이 잠에서 깨기를

 

    파블로 네루다(칠레, 1904-1973, 69세) : 고혜선 옮김

 

 

  나는 인간이 사랑과 투쟁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을 사랑한다.

  우랄산맥 내 거처에 밤이 오면

  어릴 적 소나무와

  침묵이 큰 열주처럼 에워싼다.

  이곳에서는 인간의 손, 그의 가슴에서

  밀과 강철이 태어났다.

  망치의 노래는 그 옛날의 수풀을

  새로운 희망의 현상으로 바꾼다.

  이곳에서부터 인간의 거대한 지역을 바라본다.

  애들과 여인들의 모습, 사랑,

  공장의 노래,

  어제까지 들판의 이리가 살았던 정글에

  비단향꽃무처럼 빛나는 학교.

  이 순간 내 손은 지도에서

  녹색의 평원, 수천 공장의

  연기, 섬유 공장의

  향기,

  절제된 에너지의

  놀라운 모습을 어루만진다.

       『모두의 노래』 고혜선 옮김, 문학과지성사

 

   시는 혐오를 모른다(발췌)_ 문신/ 문학평론가, 시인

  네루다 시 가운데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좋아한다. 네루다가 "나는 인간이 사랑과 투쟁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을 사랑한다."라고 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감상적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와 문명의 총체는 '사랑과 투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의 시에서는 증오나 혐오의 혐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시에서 만나는 제국주의를 향한 투쟁은 자기 파괴적인 증오, 혐오의 감정이 아니다. 그의 투쟁은 사랑에서 분출되는 에너지이고, 투쟁은 사랑의 감정을 세계로 실어 나르는 강력하고 발 빠른 마차처럼 보인다. 이러한 투쟁 앞에 혐오의 감정이 끼어들 틈은 없다. 사랑과 투쟁은 언제나 '노래'의 형식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므로. (p. 시 176/ 론 177)

 

  --------------

  * 『문파 MUNPA』 2021-가을(61)호 <시인의 촉>에서

  * 문신/ 2004년 《세계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 2016년 《동아일보》신춘문예 평론 부문 등단, 시집 『물가죽 북』『곁을 주는 일』, 동시집『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