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시집『뿌리 깊은 달』평론_ 신간 시집 읽기/ 금은돌

검지 정숙자 2013. 6. 14. 13:11

 

  

    『열린시학』 2013-여름호 <열린시학리뷰1>

 

                                                              

      금은돌 시인의 신간 시집 읽기

 

       정숙자『뿌리 깊은 달』, 천년의 시작, 2013.

 

 

   시가 곧 시인이고, 시인의 삶이 곧 시 그 자체인 사람이 있다. 정숙자. 그의 시를 보면, 그녀의 생활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녀는 시인으로서 삶에 충실하다. 남들은 한 번씩 받아보는 문학상 시상식에 참여하여, 기꺼이 박수를 쳐 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시인들의 모임에서, 시를 짓는 이야기를 듣다가도 “조금은 쓸쓸키도 했어. 남들이 살 탈 때 박수치면서 나도 저렇게 되어봤으면, 상장 한번 안아 봤으면 잔물결 끼어들었다고나 할까.”(「나의 작시운(作詩運」)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녀는 이번 시집에서 (「나의 작시욕(作詩慾」), (「나의 작시기(作詩記」), (「나의 작시학(作詩學」), (「나의 작시창(作詩窓」), (「나의 작시전(作詩戰」), (「나의 작시도(作詩道」), (「나의 작시몽(作詩夢」), (「나의 작시법(作詩法」), (「나의 작시애(作詩愛」)등, 시에 관한 시를 풀어놓는다. 그녀의 뿌리 깊은 곳에 가 닿은 시라는 실체는 무엇일까?

   시인은 국어사전을 받으면 제일 먼저 “대충”이라는 글자를 지워버리는 작업을 한다. “내 사전에 <대충>이란 없다”고 쓰고 ‘대충’에 빨간 줄을(「나의 작시애(作詩愛」) 긋는다. 그녀는 한 글자 한 글자 토씨 하나 쉬이 넘기지 못한다. 시 한편 한 편에 그녀의 영혼과 에너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젖은 칼 있다. 토씨, 어찌씨 아직 뜨겁다. 하루라도 갈지 않으면 리을 미음 비읍 자들이, 시옷 이응 지읒 자들이 이리저리 뒤엉킨다.”(「신경쇠약」),

   시인은 시 한편을 얻기 위해, 소소하면서도 거대하고, 위대하면서도 작은 고뇌 속에 빠져 들어간다. 한 편의 시는 그녀 인생에 찾아온 “한 번의 기회”이므로 그 기회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한 쾌의 기도”, “한 척의 열정”, “한 떼의 욕망”, “한 채의 분노”, “한 섬의 고뇌”, “한 길의 운명”, 한 생의 숙명“을 한 음절 한 음절에 정성을 다한다. 그녀가 시를 대하는 태도는 거의 한편의 종교 의식과 같다.

시인은 집으로 배달되는 우편 봉투를 재활용한다. 봉투를 만드는 일은 시를 짓는 의식이기도 하다. 봉투는 주로 시집이나 문예지가 담겼던 종이이다. 다름 아닌 시인들의 시를 담았던 봉투를 재활용하여 새로운 봉투로 만드는 것이다. 신문지 사이에 끼어들어오는 전단지를 버리지 못하고, 그 중에서 예쁜 나비모양을 찾으면, 가위로 꼼꼼하게 오려둔다. “봉투 하나 만들면 봉투 하나만큼의 성취”가 되고 “편지 한 통만큼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말한다. “이런 공기가 곧 시다.”라고(「나의 작시학(作詩學」) 상상력의 왕도가 없기 때문에 버려질 종이들을 모아 정확하게 ”네 귀의 합 360°짜리“를 만들어 시를 짓는다. 정확하게 그 지점을 찾아들기 위하여, 언어의 가위를 든다.

   “스스로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도/ 세워줄 수 없”기에 그녀는 일상에서 버려지는 것을 안타까이 붙들고, 오려내고, 다시 붙이며, 꾸미고 정돈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녀의 손엔 언제나 가위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읽고 쓰는 모든 일과들. 그녀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일과들은 곧바로 그녀의 가위 위에서 재조립 된다. “버려지는 전단지나 신문, 잡지 등에서 나비를 오려내는 수공”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 중에서 나비와 종이는 각별한 존재이다. “나비에 대한 애정이며 종이에 대한 우정”이 각별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신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비야말로 섬세한 신의 시(詩)이자 철학”이다. “그 한 마리 한 마리가 내 편지지를 꾸며주기도 하고, 연하엽서에 배치되어 전국 방방곡곡 행운의 전령사로 날아가기도 한다.”(「나비 홀릭(butterfry holic」) 나비는 곧 그녀의 마음이 담긴 전령사가 되어, 손편지의 봉투를 꾸며주는 초월의 존재가 된다. 나비는 갇힌 공간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유폐시켜, 시인의 삶이라는 고난을 선택한 자의 탈출구가 된다. 시에 눈먼 자, 그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지 않아, 더욱 괴로워했던 자,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기꺼이 천형을 감수하는 자의 향수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 혼자” 힘으로 스스로 딛고 일어서기까지 애써왔던 치열한 고투와 고독을 나비의 날갯짓에 실어 담는다. 이것은 문단의 한 구석에서 시를 부여잡고 사는 사람의 외롭고도 처연한 숙련과정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인은 어쩌면 임바머(Embamer, 사고나 전쟁터에서 찢어지고 흩어진 시체를 수습/봉합하여 생전의 모습을 꾸미고 정돈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현대사회에 버려진 사물과 죽음, 고통과 슬픔을 간과할 수 없는 시인은 가위를 들어, 봉합하고, 수습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외로운 존재자로서, 그 고독의 길에 기꺼이 투신한 시인의 삶에 경건한 박수를 보낸다. “나의 새는 펜 속에 있다”는 시인의 말처럼, 그 펜 속의 시가 더욱더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가볍고도 자유롭게 날갯짓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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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은돌/ 201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저서『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국학자료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