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 많던 엄마는 다 어디로 갔나/ 정끝별

검지 정숙자 2024. 8. 30. 03:22

 

    그 많던 엄마는 다 어디로 갔나

      

 

      정끝별

 

 

  살던 집 한 채가 비워졌다 

  구석구석 채워진 살림살이가 버려졌다

  매일매일 가꾸던 온갖 꽃나무들이 여기저기로 보내졌다

 

  흙으로 돌려보내고 온 날엔

  좋아했던 냉장고 속 흑임자죽을 데워 먹고 잤다

  아직 많이 남은 죽들은 냉동실에 넣었다

 

  끝까지 한 몸이었던 휠체어도 기저귀들도 보내지고

  계약은 파괴되고 계좌는 비워졌다신분증도 반납했다.

  주민센터에 제출한 사망신고서 한 장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같이 자던 짐대에서 일어나

  같이 쓰던 그릇에 같이 쓰던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같이 숨 쉬던 공기를 들이쉬고 내쉰다

 

  내 삶의 주어였던 엄마

  목적어이자 동사였던 엄마 

  아, 감탄사였던 엄마

 

  다 없다 이렇게 다 있는데. 세상 빽뺵하게 뻑뻑하게 

      - (p.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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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년간 『미당문학』 2024-하반기(18)호 <신작시> 에서

  * 정끝별/ 1988년『문학사상』 시 부문 &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은는이가』『봄이고 참이고 덤입니다』 『모래는 뭐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