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나비 운구(運柩)/ 윤옥란

검지 정숙자 2024. 8. 4. 16:20

 

    나비 운구運柩

 

    윤옥란

 

 

  그는 젊은 날 육군 소위였다

  전쟁 중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

  나라는 그의 이름을 잠시 빛나게 해 주었지만

  잃어버린 다리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목발을 의지했지만

  총알이 박혔던 후유증으로

  침상의 다리를 평생 떠날 수 없는 다리가 되었다

 

  마른 가지처럼 딱딱해진 혈관조차 빛나는 기억을 거부하자

  그는 말을 잃어버리고 허공을 응시하던 눈빛도 흐려졌다

 

  침상에서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꿈을 꾸기도 하였으나

  더 이상의 따스한 공존을 허락하지 않았다

 

  끝내는 칭찬도 비난도 없이 이승을 떠나가는

  바짝 말라버린 북어 같은 목숨 하나,

  그의 향기와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개미도 동료가 죽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동행한다는데

  달려와 울어줄 눈물 대신

  문밖에는 차가운 운구차가 대기하고 있다

 

  세상이 마지막 예의를 다하기도 전에

  흰나비 한 마리 베갯잇에 앉았다가

  푸른 하늘로 훨훨 날아간다

 

  나비가 가는 곳은 어디일까

  기억 저편으로 까마득히 사라지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당신은 그렇게 '시의 집에서' 흰 것들을 모으고 있어요. "흰 이마" "흰나비" "흰 꽃" "흰빛" "흰 관절" "눈꽃" "백묵" 같은 것들. 마치 믹 잭슨의 『뼈 모으는 소녀』에서 주인공 소녀가 뼈를 모으며 다니는 일상처럼 당신은 흰 것들을 모았어요. 나는 당신이 모은 흰 것들을 보며 환자의 상처에 대는 '거즈'를 떠올렸어요. 당신이 모으는 흰 것들이, 당신의 펜 끝에서 원고지에 옮겨지는 하얀 단어들이 당신의 손에 들린 거즈 같았거든요. 아마도 당신은 사람들의 환부에 거즈를 대는 마음으로 그 낱말들을 모으는 중이라고, 아마도 당신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에게 거즈처럼 '시를 붙이는 사람'일 것이라고, 실제로 당신은 시 속에서 거즈를 언급하기도 했죠. (p. 시 96-97/ 론 115-116 · 138) <여성민/ 시인>

 -----------------
* 시집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에서/ 2024. 7. 25. <상상인> 펴냄

* 윤옥란/ 강원 홍천 출생, 2018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니체에게 묻는다/ 나정욱  (0) 2024.08.08
쇠비름 외 1편/ 윤옥란  (0) 2024.08.04
헤아려보는 파문 외 1편/ 한영미  (0) 2024.07.24
마술의 실재/ 한영미  (0) 2024.07.24
탄생/ 임솔내  (0) 2024.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