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유성호_시(詩)라는 '프리웨이'를 향한 첨예한 예술적 자의식(발췌)/ 프리웨이 : 문정희

검지 정숙자 2024. 6. 15. 15:39

<제2회 김동명문학상 수상작>

 

    프리웨이

 

    문정희

 

 

  나 독수리같이 흘러 다니다가

  산타페였던가? 프리웨이 한가운데서

  이국 경찰에게 붙들렸다

  뒤틀린 손목 붕대로 싸매고

  눈물 훔치다가

  진짜 프리웨이는 어디 있느냐며 꺽꺽거리다가

  신호위반입니다!

  이국 경찰이 내 덜미를 잡아 세웠다

  나는 붕대 손목을 치켜 올리며

  이제야 뭐 좀 해보려는데 해는 지고

  시가 겨우 좀 떠오르는데

  사방에서 밤이 내려오고 있어요

  눈물이 앞을 가려

  그만 신호를 못 보았어요

 

  경찰은 멈칫 내 위아래를 스캔하더니

 

  그럼 신호를 바꿔야죠

  자, 푸른색! 어서 가세요

  이게 인생이요

 

  그날 그는 누구였을까

  내 손에 붕대는 여전히 감겨 있고

  사방에 저녁이 오고 있는데

  프리웨이 신호를 바꿔 줄

  그 사람?

   -전문(『시현실』 2023-가을호)

 

  라는 '프리웨이'를 향한 첨예한 예술적 자의식(발췌)_유성호/ 문학평론가

  프리웨이를 달리던 '나'는 그 한가운데서 멈추게 되었다. 이국 경찰에게 붙들렸는데, 신호위반이라는 것이다. '붕대'와 '눈물'의 은유로 상을 벗어나 보려 하지만 석양은 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는 어느새 '시'가 떠오른다. 눈물이 앞을 가려 신호를 못 보았다고 하니 경찰은 "자, 푸른색!" 하면서 신호를 바꾸어준다. 이게 인생이라고 '나'를 보내준 '그'야말로 사방으로 저녁이 오고 있을 때 프리웨이 신호를 바꾸어준 것이다. 물론 '그'는 위기의 순간에도 '시'를 가능하게 해준 뮤즈이자 생의 지남指南이고, 궁극적으로는 '프리웨이'처럼 무변無邊의 상상력을 건네준 예술적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 현현의 순간에 시인은 자신의 삶과 시 쓰기가 전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이 시편은 시로 쓴 시론詩論으로 우뚝하다. 그렇게 문정희 시학은 '시'를 상상하면서 시 쓰기만이 자신의 진정한 '프리웨이'임을 노래하는 현장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p. 시 22-23/ 론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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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현실』 2023-겨울(94)호 <제2회 김동명문학상/ 수상작/ 수상자론> 에서

  * 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서울에서 성장, 1969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오라, 거짓 사랑』『카르마의 바다』『작가의 사랑』『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등 15권, 시극집, 에세이집 등 저서 60여 권, 뉴욕에서 출판된 시집『Wind Flower』외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일본어, 중국어 등 11개국 언어로 번역된 14권의 시집이 있음, 현) 국립한국문학박물관 관장

  * 유성호1999년 ⟪서울신문⟫으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서정의 건축술』『단정한 기억』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