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밤의 성분/ 서안나

검지 정숙자 2024. 6. 2. 23:41

 

    밤의 성분

 

     서안나

 

 

  밤은 어디까지 마음일까요

  나는 밤을 오래 생각한다

  무언가에 심취하는 일은 사랑과 같아

  간 허파 갈비뼈 순서로 아프다

 

  밤에 쓴 메모는 진실일까

  밤에 쓴 메모를 아침에 지운다

  밤은 휘발성인가

 

  누군가 밤의 창문을 모두 훔쳐 간다

  제멋대로 지나가는 것들마저 아름답다

  약하고 아픈 것들은

  수분이 많은 영혼을 끌고 다닌다

  그래서 밤은 설탕 성분이 1:3 많고 고장이 잘 난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밤은 프로파간다처럼 모자를 쓰고

  버려진 개와 고양이와 실패한 공원을 키운다

  당신과 나와 실패한 것들은

  왜 모두 밤에 포함되는가

  공원의 밤은 왜 엔진처럼 시끄러운가

 

  이어폰을 끼면 밤이 밀봉된다

  유통기한이 길어진다

 

  연결부위가 단단하다 밤은, 가끔 달아난다

     -전문(p. 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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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하우스』 2024-상반기(창간)호 <시 2부> 에서

 * 서안나/ 1990년『문학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플롯 속의 그녀들』『립스틱 발달사』『새를 심었습니다』평론집, 연구서 등, 편저『전숙희 수필 선집』  동시집『엄마는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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