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작품론

정숙자 시집『공검 & 굴원』/ 자작시집 엿보기

검지 정숙자 2022. 8. 20. 02:59

 < 『시에』 2002-가을호 / 자작시집 엿보기>

 

    삶의 투영과 기호의 수용

     -공검 & 굴원(미네르바, 2022)

 

    정숙자

 

 

  시집 출간일이 2022516일인데 오늘이 717일이니 꼭 두 달이 됐다. 아직도 시집 발송 작업이 끝나지 않았지만, 몇 군데의 신문과 카페 블로그 방송 잡지 등에 소개되어, 그 필진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는 중이다. 그에 따라 자작시집 엿보기가 자연스레 객관적 입장으로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많이 읽히는 바로는 역시 표제에 나타난 공검굴원이고, 짧게 압축한 극지 푸름 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선 공검은 다음과 같다. 아참, ‘공검空劒를 찌르는 칼이라는 뜻으로 저자의 신조어임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 그것은 총체, 그것은 부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뿐더러

  능선과 능선 그 너머의 너머로까지 넘어간다

 

  눈, 그것은 태양과 비의 저장고

  네거리를 구획하고 기획하며 잠들지 않는

 

  그 눈, 을 빼앗는 자는 모든 걸 빼앗는 자다, 하지만

  그 눈, 은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

  칼이며 칼집이며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이다

 

  양날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수천수만, 아니 그 이상의 팔이라 할까

 

  (나부끼지 않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바람-그냥 보냅니다. 대충 압니다. 나누지 않은 말 괜찮습니다. 여태 잎으로 수용하고 뿌리로 살았거든요. 대지의 삶은 적나라한 게임입니다. 간혹 구름이 움찔하는 건 어느 공검에게 허를 찔렸기 때문, …일까요?)

 

  공검은 피를 묻히지 않는다

  다만 구름 속 허구를 솎는

 

  그를 일러 오늘 바람은 시인이라 한다

  공검은 육체 같은 건 가격하지 않는다

   -「공검」 전문-

 

  그리고 이번 시집은 필자의 10번째 시집으로서, 지난번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을 낸 지 5년 만의 묶음이다. 지난번 시집을 냈을 때도 자작시집 엿보기를 썼던 기억이 새롭다. 혹 그 내용을 떠올리는 독자께서는 이번 시집이 왜 그토록 어둡고 무겁고 죽음이미지가 많은지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각도를 바꾸어······ 환기換氣해 볼까.

  이번 시집은 표제에서부터 기호를 적극-수용했다는 점이 예전의 시집들과는 색다른 점이다. 기호가 우리 언어군에 들어온 지도 꽤 되었으므로, 특히 필자가 블로그 약력 표기에서 자주 사용하는 앤드 기호(앰퍼샌드=&)는 한 번쯤 어엿한 자리에 세워주고 싶은 애정이 깃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 외에도 본문에 등장하는 (그러므로 기호, 공검은 끊임없이), (근사 기호, 폐곡선), π(원주율 기호=파이, 얼음 π) 등등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속기호들이다. 더욱이 삶과 4에서는 ‘3’으로 ‘4’죽음으로 변용키도 했다. 이런 정도의 시적 허용은 발상의 전환이나 ‘pun’의 호흡으로도 수렴될 수 있으리라 담담히 문장을 꾸려보았다. 이제 한 인간의 삶을 투영한 굴원을 들추기로 한다.

 

 

  책상 모서리 가만히 들여다보다

  맑은 이름들 떠올려보다

  나 또한 더할 수 없이 맑아지는 순간이 오면

 

  눈물 중에서도 가장 맑은 눈물이 돈다

 

  슬픈 눈물

  억울한 눈물

  육체가 시킨 눈물…이 아닌

  깨끗하고 조용한 먼 곳의 눈물

  생애에 그런 눈물 몇 번이나 닿을 수 있나

  그토록 맑은 눈물 언제 다시 닦을 수 있나

 

  이슬-눈, 새벽에 맺히는 이유 알 것도 같다. 어두운 골짜기 돌아보다가, 드높고 푸른 절벽 지켜보다가 하늘도 그만 깊이깊이 맑아지고 말았던 거지. 제 안쪽 빗장도 모르는 사이 그 훤한 이슬-들 주르륵 쏟고 말았던 거지.

 

  매일매일 매일 밤, 그리도 자주 맑아지는 바탕이라 하늘이었나? 어쩌다 한 번 잠잠한 저잣거리 이곳이 아닌… 삼십삼천 사뿐히 질러온 바람. …나는 아마도 먼- 먼- 어느 산 너머에서 그의 딸이었거나 누이였을지 몰라.

 

  그의 투강 전야에

 그의 마지막 입을 옷깃에

 ‘중취독성衆醉獨醒’ 담담히 수놓던 기억

  돌덩이도 묵묵히 입 맞춰 보냈던 기억

 

  몇 겁을 다시 태어나고 돌아와도 그 피는 그 피!

 

  이천 년이 이만 년을 포갠다 한들

  그 뜻, 그 그늘이면 한목숨 아낄 리 없지

   -「굴원」 전문-

 

  굴원(屈原, 기원전 343?-기원전 278?)은 중국 역사상 대변혁기인 춘추전국시대 후기를 살았던 인물이다.그는 당시 남방의 대국이었던 초나라 태생으로 초를 건국했던 왕족 출신의 귀족이었다.* 그는 중국 문학사에서 최초의 시인으로 호출되기도 하지만, 그가 보여준 충군애국의 정신은 중국인들이 국난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를 그리워하고 호명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필자가 최초로 굴원의 삶을 우러르던 당시에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희지 않은 시기였다. 다시는 이 세상에 떠오르지 않기 위해서 돌을 안고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한 그의 선명한 신념과 결기 때문이었다. 언행일치의 삶이란,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었던가. 그의 일대기를 읽는 도중 필자는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 두며, 그에게 시 한 편을 바치고자 마음먹었고 표제로까지 올리게 됐다.

  어느새 원고 15매가 훌쩍 넘었다. 표제에 쓰인 두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만 마칠까 한다. 날씨가 이리 더운데 왜 아직껏 첫 매미가 울지 않는지 기다려지는 오후이다. ▩ (p. 228-232)

 

  * 김경엽 지음 『중국식 표정』, 2019. ㈜ 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216쪽

  **  같은 책,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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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에』 2022-가을(67)호 <자작시집 엿보기>  에서

 * 정숙자/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공검 & 굴원』『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외,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