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작품론

정숙자_수평적 진화의 값진 삶 : 최금녀

검지 정숙자 2020. 6. 4. 01:43

 

 

    수평적 진화의 값진 삶

     - 최금녀 시인론

 

     정숙자

 

 

   2020년의 4월은 참으로 혹독한 봄이 아니었나 싶다. 꽃들은 시름없이 피어 저마다 자색姿色을 다투었지만, ‘COVID-19’로 인해 전 국민의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발이 묶였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었던 살처분이라는 말이 식물계에까지 적용되어버린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여파로 주말이면 동네 산책로마저 차단되었으며, 제주도에서는 그 눈부신 유채꽃밭을 트랙터로 밀어버리는 광경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 지역이 어디 한두 곳이었겠는가.

  필자 역시 사회 전반에 깔린 그 우울감과 공황 속에서 무거운 시간을 짓누르고 있던 어느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특집 최금녀> 시인론에 대한 원고청탁 건이었다. 평소 친정 언니 같은 인품의 최금녀 시인을 논한다는 게 사뭇 버겁게 느껴졌으나, 잠시 헤아려 보니 이 글의 기승전결은 필자가 하는 게 아니고, 최금녀 시인의 삶과 작품이 이끌어 갈 것이라는 직감이 채널링(channelling)처럼 켜졌다. 필자는 깨끗한 공간과 산뜻한 시간만 준비하면 될 것이었다.

 

  우선 필자의 기억 속에 가장 뚜렷이 기억되는 최금녀 시인의 시 한 편을 꺼내 보기로 한다.

 

 

  내 몸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를 따내온 흔적이 감꼭지처럼 붙어 있다

  내 출생의 비밀이 저장된 아이디다

 

  몸 중심부에 고정되어

  어머니의 양수 속을 떠나온 후에는

  한 번도 클릭해 본 적이 없는 사이트다

 

  사물과 나의 관계가 기우뚱거릴 때

  감꼭지를 닮은 그곳에 마우스를 대고

  클릭, 더블클릭을 해보고 싶다

  감꼭지와 연결된 신의 영역에서

  까만 눈을 반짝일 감의 씨앗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나는 배꼽을 들여다본다

 

  열어볼 수 없는 아이디 하나

  몸에 간직하고 이 세상에 나온 나.

   - 「감꼭지에 마우스를 대고」 전문(최금녀 시선집, 『한 줄, 혹은 두 줄』 , 시월, 2015. 9.)

 

 

  사실 이 시는 위에 소개한 시선집에서 처음 읽었던 게 아니고, 계간 미네르바(2010, 겨울호)에서였다. 어느새 9년이나 되었다. 이 시를 보자마자 필자는 화자의 그 참신한 발상과 어느 한 획 흐트러짐 없이 빚어낸 솜씨가 놀랍고도 기뻤다. 독자의 정신적 충만이란 경이로운 작품을 발견하여 지적 소유목록으로 챙길 때가 아닌가! 프로 세계에서의 우정/애정이란 그 바탕에 프로패셔널한 정신과 생산성, 그리고 결과물은 빼놓을 수 없는 동력이자 매력이다. 거기 온유함과 지혜를 갖춘 인격이라면, 먼 길 걷는 자에게는 든든한 위안이며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굳이 자주 만나거나 많은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그는 늘 그렇게 미더운 언덕으로 존재할 것이므로.

  최금녀 시인과 필자는 몇몇이라도 따로 만나 식사를 했다거나, 심지어 어느 모임에서조차 옆자리에 앉았던 기억도 없는 듯하다. 그렇지만 항시 푸근한 느낌을 전해 받았을뿐더러, 문인으로서의 모습도 어디서든 튀거나 처지지 않는 그분만의 분위기는 배우고 싶은 교양의 면모이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앨토-톤의 음성과 넉넉한 품이 바로 옆에서 나타날 것만 같다. 그는 1960년에 失語記로 소설 부문 등단, 그 후 30여 년을 건너 시 부문에도 등단했으니, 그 내공과 열정은 방점/정점을 찍고도 남음이 있다, 고 증명할 만하다. 그의 연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간 필자가 봐온 문단-견문록을 쪼끔 펴보면 어떨까? 우리 시단에서의 생명력이란 수직 상승형수평 진화형두 부류가 있다는 점이 바로 그 시각이다.

 

  여기서, 후자에 해당하리라고 보는 필자의 소견으로 제시할 최금녀 시인의 두 번째 작품,

 

 

  조간朝刊에는 아침마다

  창이 열리고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뜬다

 

  이름깨나 들어본 사람이나

  생뚱맞은 사람이나

  한 줄, 혹은 두 줄

 

  향냄새 흥건한 이름들

  기역 니은은 아니고

  밥그릇 수대로도 아니고. 계급장대로도 아닌 것 같고

  평수대로?

  그날의 운세대로인가?

 

  유독

  향냄새가 짠하게 밀려오는

  어떤 이름에선

  잠시 침묵하고

  그 이름을 불러보며 창을 닫는다

  맑은 아침 공기 속에서

  죽음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아둔한 나도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을 알아듣는다

 

  한 줄, 혹은 두 줄이라는 그 말귀를.

   - 「한 줄, 혹은 두 줄」 전문(최금녀 시선집, 『한 줄, 혹은 두 줄』 , 시월, 2015. 9.)

 

 

  청탁받은 원고를 쓰기 위해 필자는 일단 서고에 꽂힌 시인의 책들을 뽑아 책상 위로 옮겼다. 5권의 시집과 2권의 시선집을 출간일 순서로 쌓은 다음 한 권 한 권 펴보는 감회는 새로웠다. 친필 사인본이 주는 정감이란 세월 저쪽의 정리情理를 되살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 첫 번째 시집이 들꽃은 홀로 피어라(정은문화사, 2000.)이므로 꼭 20년간()의 교감인 셈이다. 요즘엔 서명 없이 보내오는 책들도 있다. 그런 책을 대할 때면 왜 보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애써 발행한 책을 보낼 때는 필시 어떤 마음이든 마음이 담겼을 텐데……. 보내는 분도 받는 사람도 도무지 어떤 교감도 느껴지질 않는다. 봉투에조차 인쇄된 주소만이 뻣뻣하고 또렷하다. 더욱이 문인끼리 나누는 서적이라면 적어도 그보다는 좀 더 향훈이 깃들어야 하지 않을까.

  잠시 얘기가 딴 데로 흐른 점 양해를 구한다. 언제든 한 번쯤 짚고 싶은 대목이었기에 계획 없이 튀어나온 듯하지만, 정작 최금녀 시인의 책을 일일이 펴보면서 자연스레 이때다싶게 발설되었음이다. 최금녀 시인의 그런 품위는 분명 우리 모두 간직하고 이어가야 할 덕목이 아닐까 새겨보는 터이기도 하다. 책을 펴면 맨 처음 읽게 되는 페이지가 서명란인데, 거기 적힌 저자의 친필은 여러 가지 정서를 불러오곤 한다. 그간의 안부며 함께 했던 기억, 이번엔 어떤 사유가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등등, 반가움과 기대감이 빨리 읽고 싶어지게까지 한다. 아직 모르는 분이 보내온 책이라 해도 그 기대와 호기심은 매한가지다. 1부터 표4까지 지문이 닳도록 넘기고 생각하며, 줄 긋고, 서고에 간직하며……. 그 앞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감이 서리는 책들, 그 꽃들.

 

  최금녀 시인은 함경남도 영흥 출생, 실향민이다. 실향민이라는 3음절 속에는 3만 마디의 말보다 길고, 깊고, 뼈아픈 상흔이 남아 있다.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사의 가장 큰 고통이며 비극이었다. 최금녀 시인은 그때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선친의 한을 지금껏 풀지 못한 채 압록강, 바람에게도 밥 사주고 싶다」(『길 위에 시간을 묻다』 , 문학세계사. 2012.)라고 노래했다. “여든여섯의 아버지가 눈 감으며 내게 남긴 유산이 있다.” “고향에 가거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찾아 뵈어라.” 이게 어찌 최금녀 시인만의 유산이겠는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울리는 슬픈정한이며 여한인 것이다.

  앞서 소개한 두 편의 시를 최금녀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고 싶다. 아날로그와 인터넷 세대로의 이행 지점에서 나온 감꼭지에 마우스를 대고는 역사성을 득했고, 그리 가파르지 않은 문장으로써 보편성까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뿐 아니라 IT시대의 초본을 만천하에 게시한 예이기도 하다. “감꼭지에 마우스를댄다는 발상 자체가 바로 문화의 흐름을 초고속으로 연결해버린 솜씨가 아닌가. 한 줄, 혹은 두 줄은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이거니와 이로써 생몰生沒의 정황을 능히 표출한 셈이다. 압록강, 바람에게도 밥 사주고 싶다는 노정의 압축이므로 경이/경외로울 뿐이다.

  이제, 최금녀 시인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10년이 많으면 형처럼 섬기고(十年以長則兄事之), 5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한다(五年以長則肩隨之)동몽선습童蒙先習의 지침에 따라 옷깃을 여몄지만 말이다. 삶에서 신산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때때로 위로가 될만한 한 구절을 옮기며 펜을 놓을까 한다. “수많은 항구로 떠나는 배들이 있지만, 아프지 않은 인생으로 떠나는 배는 한 척도 없고, 망각이 가능한 정박지도 없어, 이 모든 게 오래전에 일어났지만, 내 슬픔은 그보다 더 오래됐다네.”(페르난두 페소아 『페소아와 페소아들』, 317쪽. 워크룸 프레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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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동네』 2020-6월호 <특집_최금녀/ 시인론>에서

* 최금녀/ 함남 영흥 출생, 1960년 『자유문학』 으로 소설 부문 등단 & 1998년 『문예운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 『길 위에 시간을 묻다』 『저 분홍빛 손들』 등, 시선집 『최금녀의 시와 시세계』 『한 줄, 혹은 두 줄』 

* 정숙자/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 『행복음자리표』 『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