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축제/ 최준 일요일의 축제 최준 비어 있습니다 주택가 집과 집들, 그 사이 공터 꽃이 피어 있습니다 나비들이 꽃과 놀고 있습니다 축제입니다 나비들의 날개가 꽃잎을 닮았습니다 어쩌면 천상에서는 나비와 꽃이 하나 아니었을까요 꽃잎과 날개가 가뿐하게 들어올리는 세상 나비들은 제 날개에 어울리는 허공을 ..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7.01
강물이 맑고 푸른 까닭은/ 이한종 강물이 맑고 푸른 까닭은 이한종 강물이 맑고 푸른 까닭은 강바닥에 놓여 있는 돌에 발 을 씻고 흐르기 때문입니다 강물이 맑고 푸른 까닭은 강둑의 무성한 풀에 몸을 씻고 흐르기 때문입니다 자칫 강바닥의 돌을 옮기고 강둑의 풀을 뽑아버린다면 강과 바다는 이내 눈을 까맣게 감아버릴 것입니다 강..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6.24
앞만 보고 달려온 물고기/ 이한종 앞만 보고 달려온 물고기 이한종 앞만 보고 달려온 물고기는 자신의 지느러미와 꼬리 를 볼 수 없는 법, 큰사람이 되려면 앞을 보고 살라 하시 던 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앞만 보고 달려온 나는 어릴 적 제게 하신 할머니의 그 말씀이 뒤를 보고 살아야 한 다는 말씀인 줄 나이 쉰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6.24
아무도 안 보는 곳/ 유안진 아무도 안 보는 곳 유안진 수도원장이 한 수도사만 편애했다. 다들 불만을 토로했지 만, 원장신부는 오히려 당당했고, ‘그 까닭’을 알고 싶다고 요 구하자, 식당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사과 한 광주리를 끌고 온 원장은, 한 개씩 나눠주며 아무 도 안 보는 데 가서 먹고, 사과 속 숭텡이를 갖고 오..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6.24
내 남자의 사랑법/ 이미란 내 남자의 사랑법 이미란 돌아누운 그의 등줄기 사이로 마른바람이 분다 그 바람벽에 살을 묻고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온전한 그림자의 알몸을 그의 등에 비비며 축축한 암술로 돋아나는 회한을 가닥가닥 엮어서 그의 등에 암각 된 성난 슬픔의 뿌리를 토닥이다가 잃어버린 모성의 숲 내 비린 젖무덤..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6.11
무반주 소나타를 들으며 생각한다/ 이미란 무반주 소나타를 들으며 생각한다 이미란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무엇이 그날의 아쉬움을 이끌며 구석진 불빛 아래의 의자로 앉게 했는지 모든 불온한 은유는 가시뿐인 선인장의 미래 쏟아지던 웃음과 웃음들 사이에서 어딘지 미심쩍고 겸손했던 슬픈 위장의 말들 가슴을 훑고 지나던 길모퉁이 주..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6.11
벽 2 / 박지현 벽 2 박지현 재개발 아파트 단지 반쯤 무너진 벽들 분홍색 벽지들만 바람에 나부낍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곰팡이꽃만 피웠습니다 한땐 등 기대고 울타리가 되었던 비바람 눈보라를 묵묵히 끌어안고 쩍쩍쩍 금이 갑니다, 침묵의 오랜 날들이 대못에 박힌 자국 아직은 그대로인데 부서져 가루가 된들 ..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6.10
풋잠/ 박지현 풋잠 박지현 사내 하나 잠들어 있다, 플랫폼 초록의자에 날개돋이 한 순간을 기다리는 고치처럼 신발은 의자 밑에다 가지런히 벗어놓고 빛바랜 겨울점퍼 겹겹으로 껴입고 바다 밑바닥에서 새우잠 깊은 사내 얼마나 걸어왔을까, 밑창 꺼진 저 구두 그 사내 종착역은 어디에도 없다 수없이 전동차가 멈..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6.10
버린 애/ 김이듬 버린 애 김이듬 거의 다 왔어 눈을 가린 헝겊을 풀자 숲입니다 뿌예 보이다가 푸르른 꽃 진 벚나무 아래 초여름 저녁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습니다 내가 느낀 건 누구나 다 느낀다는 듯 웃고 있습니다 나를 데려온 이는 어디 갔을까요 거의 다 왔어 눈을 가린 손을 풀자 숲입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 우..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5.28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 김이듬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 김이듬 이건 내가 쓴 시가 아니에요 대충 만년필로 휘갈긴 것도 있고 침 묻힌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쓰고 빨간 밑줄을 그 은 것도 있네요 나는 안경을 쓰고 세심하게 윤문하지만 알아볼 수 없는 글자 때문에 제멋대로 몇 자 넣을 때도 있어요 간혹 자기소개서 대행업체 직원같이 .. 시집에서 읽은 시 2011.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