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애
김이듬
거의 다 왔어
눈을 가린 헝겊을 풀자
숲입니다
뿌예 보이다가 푸르른
꽃 진 벚나무 아래
초여름 저녁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습니다
내가 느낀 건 누구나 다 느낀다는 듯 웃고 있습니다
나를 데려온 이는 어디 갔을까요
거의 다 왔어
눈을 가린 손을 풀자
숲입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
우물에 가득 쌓인 감 이파리를 치우며
할머니가 얘기했었죠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
그때 나비가 날아갔고
무덤 곁 풀숲에 매인 검은 염소도 보였죠
나는 숲으로 들어왔습니다
누가 날 여기 버렸을까요
어디로 가야 할지 가르쳐주세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외할머니도 있고 어머니도 있고
재작년에 죽은 내 동생도 있습니다
내가 못 본 걸 누구나 다 봤다는 듯 웃고 있어요
발아래 잎사귀가 수북합니다
커다란 구덩이도 보입니다
청춘도 사춘기도 없었으나
희미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나는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양손을 꽉 잡습니다
내 엄지손가락이 내 손바닥을 뚫었습니다
바람에 머리칼은 마구 헝클어지고
새들이 날아 들어옵니다
제 둥지인 줄 알고
누가 내 머릿속에서 지저귀는 새를 꺼내주세요
거의 다 왔어
숲입니다
이 무시무시하고 빽빽한 숲 속에서
나는 오해를 풀려는 듯 뛰어다닙니다
아이들이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나무 사이를
내가 버린 애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 시집『말할 수 없는 애인』에서/ 2011.4.23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 김이듬/ 경남 진주 출생, 2001년『포에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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