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사랑법
이미란
돌아누운 그의 등줄기 사이로 마른바람이 분다
그 바람벽에 살을 묻고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온전한 그림자의 알몸을 그의 등에 비비며
축축한 암술로 돋아나는 회한을 가닥가닥 엮어서
그의 등에 암각 된 성난 슬픔의 뿌리를 토닥이다가
잃어버린 모성의 숲 내 비린 젖무덤 사이에
이 세상 가장 편안한 숨을 내려놓게 해주었던가?
미안한 당신, 이라고 불러본다
내 남자의 등에 접혀진 얼룩무늬의 날개를 본다
나달나달하게 삭은 깊은 뒤란의 날개 속엔
오랜 세월의 먼지 속에서 골라낸 성근 햇빛과
달의 골수로 길러낸 사향노루의 주머니와
첩첩한 소금창고 속 항아리 밑에 묻어둔
그만의 황홀한 비문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 맨홀 속 같은 그리움의 뚜껑을 열고 들어가
별빛을 조명삼아 뒹굴어본 적이 있었던가?
미안했고 미안했던 당신, 이라고 불러본다
밤의 창문이 가로등 불빛을 포개며 돌아눕는다
저만큼 밀려난 등과 젖가슴의 간격이 휑하다
그의 등을 타고 온 마른바람의 숲이
알타미라 동국벽화의 구석기시대처럼 멀고 먼
야생의 무덤 같은 동굴의 입구를 지키고 서있다
거기 한 사나이의 꿈이 굽은 세월로 박혀있다
전생의 못다 푼 사향노루의 들판을 새겨 놓는다
거꾸로 도는 시계를 따라 해바라기처럼 퍼져가는
내 남자의 등에 매달린 빛나는 암각의 사랑!
* 시집『내 남자의 사랑법』에서/ 2011.4.30 도서출판 <황금알> 펴냄
* 이미란/ 강원도 양구 출생, 1997년『학산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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