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내 남자의 사랑법/ 이미란

검지 정숙자 2011. 6. 11. 02:02

 


    내 남자의 사랑법


     이미란



  돌아누운 그의 등줄기 사이로 마른바람이 분다

  그 바람벽에 살을 묻고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온전한 그림자의 알몸을 그의 등에 비비며

  축축한 암술로 돋아나는 회한을 가닥가닥 엮어서

  그의 등에 암각 된 성난 슬픔의 뿌리를 토닥이다가

  잃어버린 모성의 숲 내 비린 젖무덤 사이에

  이 세상 가장 편안한 숨을 내려놓게 해주었던가?


  미안한 당신, 이라고 불러본다


  내 남자의 등에 접혀진 얼룩무늬의 날개를 본다

  나달나달하게 삭은 깊은 뒤란의 날개 속엔

  오랜 세월의 먼지 속에서 골라낸 성근 햇빛과

  달의 골수로 길러낸 사향노루의 주머니와

  첩첩한 소금창고 속 항아리 밑에 묻어둔

  그만의 황홀한 비문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 맨홀 속 같은 그리움의 뚜껑을 열고 들어가

  별빛을 조명삼아 뒹굴어본 적이 있었던가?


  미안했고 미안했던 당신, 이라고 불러본다


  밤의 창문이 가로등 불빛을 포개며 돌아눕는다

  저만큼 밀려난 등과 젖가슴의 간격이 휑하다

  그의 등을 타고 온 마른바람의 숲이

  알타미라 동국벽화의 구석기시대처럼 멀고 먼

  야생의 무덤 같은 동굴의 입구를 지키고 서있다

  거기 한 사나이의 꿈이 굽은 세월로 박혀있다

  전생의 못다 푼 사향노루의 들판을 새겨 놓는다

  거꾸로 도는 시계를 따라 해바라기처럼 퍼져가는

 

  내 남자의 등에 매달린 빛나는 암각의 사랑!



  * 시집『내 남자의 사랑법』에서/ 2011.4.30 도서출판 <황금알> 펴냄

  * 이미란/ 강원도 양구 출생, 1997년『학산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